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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푸른 상흔 ㅣ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권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평점 :
정말 오랜만에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을 읽었다. 아주 오래 전 사강의 소설들을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상당히 재밌게 읽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이런 저질 기억이라니. 이번에 리커버 개정판이 나왔다고 했을 때 읽은 것이 분명한 책들 몇 권을 빼고 이 책을 선택했다. 책소개에 따르면 ‘소설과 에세이 형식의 중간을 넘나드는 특이한 작품’이라고 한다. 읽다 보면 사강의 이야기가 중간중간 나온다.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창작자의 감정을 곁들이고 있다. 재밌는 설정이다.
무일푼으로 프랑스에 온 스웨덴 출신 세바스티앵과 엘레오노르 남매가 주인공이다. 이 남매는 아주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다. 이 외모와 특이한 윤리관 덕분에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파리에서 살게 된다. 프랑스 68 혁명 뒤의 시기로 설정한 탓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성 윤리관이 상당히 자유롭다. 동성애자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유부녀가 애인과 그 여동생을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한다. 재밌는 부분은 이 유부녀가 엘레오노르가 자기집 정원사와 잠을 자는 것에 대해 보여주는 의식이다. 남자를 노예로 만들 수는 있지만 노예를 자신의 남친으로 만들 수 없다는 계급의식이다. 읽으면서 뭐지? 하는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남매의 파리 생존기는 결코 화려하지 않다. 그렇다고 젊지도 않다. 세바스티앵은 나이가 40이나 된다. 하지만 뛰어난 외모는 여자들을 끌어당긴다. 동생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수영복을 입었을 때 모습을 작가는 완벽하다는 단어로 표현한다. 어떤 몸매일까? 세바스티앵은 특별히 어떤 외모에 끌리는 것 같지 않다. 자신의 생존방법인 것일까? 이 남매에게 섹스는 사랑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부분에 대해 작가는 미래 세대를 끌고 와 다른 이야기를 풀어낸다. 읽으면서 이 부분이 오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작가가 자기 작품의 분량에 대해 말한다. 보통 사람들이 사는 책들은 200~300쪽 분량인데 자신의 책은 실제 200쪽에 가깝다고. 몇 권 확인하니 그 범위 안에 들어 있다.
남에게 빌붙어 사는 것 같은 이 남매는 아주 특이하다. 엘레오노르는 늘 책을 들고 있는데 장르가 미스터리물이다. 아주 잘 생긴 양성애자 배우가 그녀에게 끌려 보여준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홀로 집에 돌아오는 장면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남자에게 빠진 여자라면 그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다고 해도 그냥 넘어가겠지만 이성이 남았다면 그 행동의 누적에 반발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그를 전혀 만나지 않느냐 하면 아니다. 분노한 남자와 집에 찾아왔을 때 폭력을 휘두를 것 같았는데 그녀가 읽어준 문장에 웃고, 그녀 곁에 머문다. 예상하지 못한 장면과 전개다.
작가가 갑자기 한 남매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같이 늘어놓는다. 이런 형식이란 것을 몰랐다면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의문을 품고 읽었을 것이다. 이 남매의 이야기를 창작하면서 생기는 문제와 어려움도 나오고, 독자와 사회문제에 대한 견해까지 적어 놓았다. 시대와 작가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고, 왠지 모르게 그 단어들이 나에게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아쉬운 대목이다. 자극적인 몇 곳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 소설의 마지막은 예상 외의 장면이 연속적으로 펼쳐진다. 자살과 만남이 이런 식으로 갑자기 튀어나와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내가 중요한 뭔가를 놓친 것일까? 어릴 때 읽었던 재미를 누리지 못했는데 언제 그녀의 대표작들을 다시 읽고 기억을 새롭게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