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이유를 찾아 살아간다
아사이 료 지음, 곽세라 옮김 / 비에이블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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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릴 때부터 강요받는 것이 하나 있다. 원대한 포부나 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살면서 가장 흔하게 듣는 질문이 ‘너는 꿈이 무엇이냐?’와 ‘무엇이 되고 싶냐?’ 하는 것들이었다. 만화를 좋아했던 내가 한 답은 만화방 주인이었는데 원대한 포부나 꿈과는 거리가 멀었다. 먼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워 하나씩 그 계획을 달성하는 것도 내 성질과 맞지 않았다. 강요된 교육과 강요된 미래에 대한 설계 등은 언제나 내 삶과 충돌했다. 그렇다고 사회 바깥을 겉도는 아웃사이더도 아니다. 그냥 흔하게 우리 주변에서 보는 아저씨 중 한 명으로 살았다. 이런 나지만 살면서 고민이나 미래에 두려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하루와 현실에 충실하게 살았다고 하면 너무 포장하는 것일까? 제목에 먼저 꽂히고, 작가의 이력을 보고 더 읽고 싶어 선택한 책이다. 내가 예상한 것과 다른 설정과 전개이지만 뛰어난 가독성과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한 사람이 아니다. 책소개에 나오는 럭셔리한 두뇌에 퍼펙트한 운동신경을 가진 만년 1등 유스케와 타고난 소심함으로 무장한 오랜 단짝 도모야에 새로운 전학생 가즈히로가 전체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는 것처럼 설명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각 장마다 한 사람이 등장해 자신의 삶과 생각을 이야기하고, 이런 이들 앞과 옆에 유스케와 도모야가 있는 설정이다. 그리고 첫 장에서 이들과 관계없는 간호사와 그 동생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로 시작해 유스케와 도모야로 자연스럽게 관계가 이어지는데 이때 유스케에 대해 받은 인상은 이후 소설을 읽으면서 자꾸 변한다. 식물인간처럼 변한 도모야를 매일 와서 간호하는 유스케의 행위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파헤치는 역할도 한다.


가즈히로는 자주 전학을 다니는 아이다. 처음 등교한 날 이 학교에서 스키 수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전학생인 그를 친절하게 도와주는 학생이 바로 도모야다. 도모야의 단짝은 잘 생기고 공부도 운동도 1등인 유스케다. 이 세 명은 친해져 같이 놀러 다닌다. 이때 유행하는 만화책이 있었다. <제국의 법칙>이란 전쟁만화다. 영화로도 제작되었고, 아이들은 이 영화 속 캐릭터에 열광한다. 명칭에 대해 잘 모르는 아이들이 보기에 유스케 아버지 명함에 나온 이름은 영화 속 캐릭터와 닮아 보인다. 물론 이 실체가 다음 이야기에서 깨어지지만 초등학생들의 환상 속에서는 아직 그 힘이 유지된다. 이 삼총사가 학년이 올라가면서 반이 갈린다. 유스케와 가즈히로는 같은 반이고, 도모야는 다른 반이다. 이때 유스케의 강렬한 경쟁의식이 밖으로 강하게 드러난다.


다음 장으로 넘어가면 아야나라는 여학생이 화자다. 그녀의 절친은 유스케에 빠져 있고, 그녀는 도모야에 관심이 있다. 열네 살 소녀의 시선으로 그들의 삶과 유스케 등의 행동을 관찰한다. 학교에서 전체 석차를 붙이는 것을 금지하자 유스케는 초등학교때처럼 화를 낸다. 모든 운동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던 유스케가 단 하나 잘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수영이다. 도모야는 수영부의 부장까지 된다. 그 시절 소년 소녀의 미묘한 감수성과 감정을 담아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런 구성은 유스케 등이 대학생이 된 후 다른 대학생의 시선으로 풀려나오고, 그 이후에는 다큐멘터리 감독의 시선으로 넘어간다. 자신들의 삶을 보여주고, 그 삶 속에 유스케 등이 놓여 있다. 읽으면서 그들의 삶과 생각들이 계속해서 나의 과거를 돌아보고, 비교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면 하나의 가설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산족과 바다족의 대결이란 설정이다. 인기 만화와 엮이고, 도시전설과 이어지면서 이 가설은 점점 힘을 얻는다. 도모야가 식물인간처럼 변하게 된 사연이 바로 이 가설과 관계 있다. 그리고 이 가설은 두 청년 유스케와 도모야의 삶과 연결된다. 강요된 지식의 주입이 만들어낸 삶이 각자의 성격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드러난다. 삶의 이유를 자신의 존재감을 밖으로 드러내고 싸우는데 있는 유스케와 조용하게 자신의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도모야의 삶으로 말이다. 이 과정에 각각의 화자를 내세워 그 시절의 고민과 그들이 바라본 둘의 삶을 보여준다. 이때 보여지는 유스케의 모습은 어릴 때 아주 뛰어난 학생이었던 모습은 사리지고 존재를 알리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행동만 부각된다. 살기 위한 이유가 아닌 죽을 이유를 찾아 살아가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하나의 가설이 나오면서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빠진 듯한 느낌이지만 뛰어난 가독성과 마지막 설정이 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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