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꽃을 삼킨 여자 ㅣ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김재희 지음 / 몽실북스 / 2022년 3월
평점 :
여성 픽업 아티스트의 세계를 그려낸 소설이다. 픽업 아티스트에 대한 정의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나무위키의 정의가 좀더 분명한 것 같다. 특정 상대를 주요 타겟으로 하여 섹스나 금전적인 이득 혹은 그에 준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는 사기꾼들을 통틀어 지칭하는 단어다. 이 소설에서 설희연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여름 두 달 동안 바짝 일해서 일 년 동안의 월세를 버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돈도 그렇게 큰 금액이 아니다. 기껏해야 한 사람당 1~2백만 원 정도다. 소액 사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녀에게 사기당한 남자들에게도 크게 부담되는 금액이 아니다. 하지만 그 숫자가 늘어나게 되면 경찰에 신고하는 사람도 늘어난다. 이 소설 속 남녀 형사는 바로 이 소액 사기를 수사한다.
서선익과 강아람은 같은 계급이다. 나이나 경력 차이가 상당히 나지만 아람이 프로파일러 특채 합격했기 때문이다. 이 둘이 설희연의 소액 사기를 수사하는데 경찰 후보생 한 명이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바로 설희연이다. 서로 관할은 다르지만 정보를 교환하면서 설희연을 쫓는다. 주로 선인과 아람의 행위에 집중되어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피살자 김만동의 죽음은 타살이 분명하다. 그의 죽음 전후에 그가 죽은 모텔 방에 들어갔다가 나온 여자가 있다. 경찰은 그 여자를 설희연으로 추측한다. 설희연에 대한 자료가 충분하지 않으니 주민등록증 사진만 나올 뿐이다. 그런데 나중에 구글에서 다른 이름과 함께 검색하니 어릴 때 사진이 나온다.
형사의 수사가 한 축을 이룬다면 설희연의 삶은 또 다른 한 축이다. 왜 그녀가 이런 삶을 살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학업을 제대로 마치지도 못하고, 가출팸에서는 매춘을 강요당한다. 가장 낮은 곳을 전전한 그녀 곁에는 주성이라는 언니가 함께 있었다. 그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 중 하나가 바로 주성이와 함께 월세를 구해 산 시절이다. 이 시절도 주성이의 결혼과 함께 사라진다. 나중에 주성이의 삶이 얼마나 불안과 두려움과 긴장으로 가득한지 나온다. 자신의 과거가 밝혀지면 일어나는 일 때문이다. 가장 편한 설희연과도 만나는 것이 두렵다. 남편이, 시댁이 자신의 과거를 아는 것이 겁나기 때문이다. 희연도 쉽게 그녀에게 연락을 하지 못한다.
설희연은 평범한 얼굴이지만 아주 큰 가슴을 가지고 있다. 학창 시절 부끄럽고 거추장스럽기만 했던 가슴이지만 이제는 그녀의 생존 무기가 되었다. 심리학 서적들을 읽고 말과 행동과 톡 등을 조심스럽게 진행하면 자신의 먹이를 찾는다. 아주 작은 호의와 칭찬이 겹들여지면 남자들은 살짝 넘어온다. 늦은 데이터가 끝날 때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인출해야 한다고 말하면 남자들은 100만 원 정도는 생각보다 쉽게 빌려준다. 그 돈의 목적은 분명하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한다. 가끔 그 남자에게 끌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녀는 자신이 상황을 생각하면 더 나아가지 못한다. 그런 이유 중 하나가 이 소설 속에 은연중에 나온다. 과거에 새겨진 주홍글씨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인터넷에 박제되어 남아 있다.
소액사기범으로 설희연을 쫓는 두 형사, 선익과 아람은 서로 다른 세대와 젠더 감성을 가지고 있다. 이 둘의 대화를 읽다 보면 페미니즘에 대한 엇갈린 시각이 그대로 드러난다. 물론 둘의 성격이나 경험의 차이도 무시할 수는 없다. 여기에 프로파일러이면서 방송인인 감건호와 여현정을 조연으로 등장시킨다. 방송국 풍경과 살아남기 위해 그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행동들이 나타난다. 설희연을 쫓는 것이 선익과 아람이라면 김만동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아내는 것은 여현정 등이다. 여현정이 이렇게 할 수 있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불법적인 수단들이다. 다른 소설에서 이미 만난 감건호인데 왠지 반갑다. 이것은 나중에 바리스타 탐정 마환의 등장으로 정점을 찍는다. 다른 작가의 작품에 등장한 주인공을 이렇게 등장시키다니 재밌다.
이번 소설은 픽업 아티스트란 직업과 그 여성의 삶을 천천히 보여준다. 자극적인 장면이나 살인 등을 상당히 자제했다. 낯익은 많은 인물들을 등장시켜 반가움을 배가시키고, 천천히 풀어낸 여성의 심리 묘사는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읽다 보면 설희연이 살인 사건의 범인인가 하는 의문보다 그녀의 불안정한 삶에 더 눈길이 간다. 사기꾼이지만 소박한 목표를 가진 그녀의 행동과 심리는 왠지 동정을 느끼게 한다. 억지로 사건을 만들기보다는 설희연과 픽업 아티스트란 일에 집중하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보여주고, 흥미를 유지한다. 독자에 따라서는 조연으로 나온 사람들에 의문을 표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