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태양의 저쪽 밤의 이쪽 - 작가를 따라 작품 현장을 걷다
함정임 지음 / 열림원 / 2022년 2월
평점 :
제목을 보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이미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작가는 에필로그에 이 소설의 흐름 속에 있다고 말한다. 솔직히 말해 제목만 놓고 보면 그렇게 끌리지 않는다. 아마도 하루키의 소설 제목에서 빌려온 듯한 제목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함정임이란 이름과 세계문학기행이란 소개가 나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작가의 다른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고, 이것이 여행과 연결되면 더욱 끌린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전혀 인식하지 못한 부분을 건드리면서 소설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혀 주기 때문이다.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내가 놓쳤고,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 부분들을 인용한 것을 보고 또 한수 배운다.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같은 작가가 중복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작가들과 작품이 이 에세이에 녹아 있다. 유럽과 미국과 일본과 한국 등을 오가며 자신이 경험하고, 느낀 것과 그 도시의 모습을 차분하게 풀어낸다. 읽다 보면 다시 한번 프루스트와 플로베르의 소설에 대한 도전 의지를 불태우게 한다. 예전에 읽고 이것이 왜 고전인지 몰랐던 <마담 보바리>나 감히 도전조차 못하고 있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등이다. 이 둘 모두 사 놓고 고이 모셔 두기만 하고 있다. 나의 이야기 중심 독서법을 생각하면 이 둘은 취향과 참 동떨어져 있다. <마담 보바리> 예찬은 워낙 많이 들어서 다시 도전해볼 예정이지만 기약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책을 읽다 보면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들이 계속 눈에 들어온다.
작가를 따라 작품 현장을 걸으면서 그 기록을 남긴 것이 이 책이다. 예전 같으면 이런 기행을 나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테지만 요즘은 그런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이전 같은 열정이 사라진 것도 하나의 이유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현장에서 본 것이 내가 머릿속에 상상한 것과 달라서 느끼는 아쉬움 때문이다. 어쩌면 그 공간에 대한 기억보다 이야기에 더 집중하는 나의 독서법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 여행지 근처라면 둘러보고 싶어할 것이다. 그곳에 가게 된다면 그 공간에서 작가에 대한 기억 등을 떠올리며 잠시 추억에 빠질 것이다. 그 공간에 대하 진한 몰입은 아마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가가 쓴 수많은 글 중에서 내가 어딘가에서 읽은 듯한 글이 한두 편 있다. 하나는 박완서 작가를 추모하며 쓴 글이고, 다른 하나는 김지원 작가에 추억을 풀어낸 글이다. 이런 글들을 보면 이전에 읽은 작가의 작품이지만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뭐 이런 마음이 이 책을 읽으면서 수없이 생겨났으니 꼭 누구라고 특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 놓고 오랫동안 묵혀 두고 있는 책이라면 눈길이 절로 간다.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같은 경우다. 학창 시절 <마의 산>을 꾸역꾸역 읽은 적이 있기에 사실 쉽게 손이 나가지 않는다. 그보다 짧은 소설이니 언젠가는 읽지 않을까 하는 기대만 해본다.
작가는 여행길에 오르는 사람에게 그곳을 무대로 쓴 소설 한 권씩 품고 가라고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다가 더블린에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넣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과연 이 책을 여행지에서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그 두툼하고 어려운 책을 말이다. “적어도 한 달 이상은 두 발로 걸어 다니며 보고 듣고 읽고 풀어야 한다.”란 말을 생각하면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내가 한 여행지에 그렇게 오랫동안 머문 적이 없기에 더욱 그렇다. 한 곳에서 하나의 풍경을 오랫동안 바라보다 보면 그 변화가 어느 순간 마음에 쏙 들어온다. 그때의 아름다움이나 새로움이 주는 환희는 경험자만이 알 수 있다. 후지산에 대한 다자이 오사무의 글을 읽다 보니 갑자기 그 경험이 떠올랐다.
<오디세이아>에 대한 이야기를 오래 전에 읽은 기억은 있는데 원전은 아니었다. 완역본을 읽고 싶다는 욕망을 품었지만 계속 뒤로 밀린다. 작가들이 이 작품을 분석하고 해석하고 찬양할 때 나는 아직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자각을 한다. 롤랑 바르트에 대한 글은 또 어떤가. 어렵다고 소문난 작가이지 않은가. 유명한 문구 하나 보다 그가 쓴 사진에 대한 글에 더 끌린 작가를 보고 나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대한 글은 또 다른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이전 이름과 헷갈렸던 기억도. 나에게 조금 낯선 젊은 한국 작가에 대한 글은 새로운 독서 목록을 작성하게 한다. 다시 책을 뒤적이다 보니 읽은 책들에서 놓친 것들과 새롭게 읽고 싶은 책들이 눈에 계속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