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에 발표된 고전 추리다. 언제부터인가 고전 추리를 잘 읽지 않는다. 한때 아주 열심히 읽었는데 최근 작품들에 집중하다 보니 점점 뒤로 처진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도 사놓고 묵혀 두고 있는 것이 많다. 조르주 심농의 메그레 반장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전집이 그대로 쌓여 있다. 그래도 고전 추리에 계속 눈길이 간다. 이 소설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리고 잔혹 코믹극이란 분류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느린 템포로 시작하는 전반부는 왠지 취향에 맞지 않는다. 중반을 넘어가면서 연쇄살인이 일어나고, 개인들의 숨겨진 사연들이 나오면서 그 재미가 급격히 늘어났다.
애들레이드 애덤스는 리슐리외 호텔에 장기 거주 중인 독신 여성이다. 이 소설에서 애들레이드는 호텔에 머무는 투숙객들에 대한 관찰자다. 냉정하게 평가하면 자신의 기준으로 투숙객들을 관찰하고 나눈다. 오랫동안 머물면서 관찰한 것이라 개인의 애정도에 따라 평가가 조금씩 엇갈린다. 각자 비밀을 가진 채 이 호텔에 머문다. 첫 번째 살인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이 비밀은 그냥 일상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애드레이드의 방에서 참혹하게 살해된 시체가 발견된 후 이 비밀은 사건 해결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 이전까지는 이 호텔 투숙객들의 일상과 미묘한 관계들에 대한 묘사로 가득하다.
애들레이드가 처음 시체와 접촉했을 때 장면은 아주 섬세하고 압축적인 서늘함을 보여준다. 이때부터 나의 몰입도는 높아졌다. 시체에 대한 묘사도 아주 강렬하고 사실적이다. 이 사건 이후 경찰이 도착해서 수사를 시작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빠르게 투숙객들의 정보를 파악한 채 심문을 한다. 죽은 사람의 정체가 탐정이란 사실이 밝혀진다. 무슨 일로, 왜 그는 이 호텔에 투숙했고, 어떤 일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을까? 그리고 첫 번째 용의자가 나온다. 그 용의자는 달아난다. 호텔 안을 뒤져도 보이지 않는다. 얼마 후 그녀가 떨어져 죽은 채 발견된다. 목이 졸려 죽은 후 떨어졌다. 확실한 처리 방법이다.
첫 살인이 있은 후 애들레이드는 방을 바꾼다. 사건 현장이니 어쩔 수 없다. 5층 방으로 옮긴 후 그녀에게 쪽지 하나가 온다. 협박이다. 천 달러를 주지 않으면 어데어 모녀의 비밀을 밝히겠다고 한다. 나름의 기지를 발휘해 범인을 기다리지만 실수로 총을 발사한다. 총소리를 듣고 가장 먼저 온 인물은 의외로 스티븐 랜싱이다. 잘 생긴 화장품 영업사원이자 바람둥이다. 늦은 밤인데도 그는 정장을 입고 있다. 정체가 수상하다. 경찰도 수상하게 생각한다. 이 장면에서 애들레이드의 현실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가발에, 틀니를 낀 그녀의 모습을. 스티븐의 표현에 의하면 장대한 기골까지. 이 사건 이후 둘 사이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진다.
이후 애들레이드와 스티븐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바람둥이의 유들유들한 표현이 조금씩 먹혀 들어간다. 그리고 의문 하나를 던진다. 왜 탐정은 애들레이드의 방에서 죽은 것일까? 그 방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두 번째 죽음도 마찬가지다. 사건은 계속 일어나고, 투숙객들의 숨겨진 비밀이 하나씩 밝혀진다. 이 비밀 속에 엇갈린 관계가 드러나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최근 소설 같은 긴박감이나 속도감이 조금 떨어진다. 하지만 반전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아주 흥미롭다. 마지막 진범이 나타날 때 즈음이 되면 홈즈의 명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단서들이 모여 애들레이드에게 번뜩임을 줄 때 사건이 해결될 것처럼 보이지만 사건은 더 복잡하다.
누구나 비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비밀이 욕망과 뒤엉키면 어떤 식으로 번질 지 모른다. 이 호텔에 머무는 사람들의 비밀은 은밀하고, 아주 탐욕적이다. 과도한 탐욕이 이성을 뒤틀고, 연쇄살인으로 이어진다. 이 살인 속에서도 사랑의 기운은 곳곳에 스며든다.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맴돌거나 주저한다. 물론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은 그 사실을 안다. 안타까운 장면도 나온다. 이런 와중에 멋지게 중심을 잡으면서 사건의 핵심으로 다가가는 애들레이드의 존재는 추억 속 할머니 탐정을 떠올린다. 그 할머니처럼 사건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지만 유쾌하고 섬세한 마음이 읽는 동안 잔잔한 재미를 계속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