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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드 오브 퓨처 ㅣ 안전가옥 FIC-PICK 1
윤이나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1월
평점 :
안전가옥 옴니버스 픽션 시리즈 FIC-PICK의 첫 번째 책이다. 다섯 명의 여성 작가가 쓴 가까운 미래의 로맨스를 다룬 단편소설집이다. 안전가옥에서 나온 소설들을 좋아하지만 로맨스는 그렇게 관심이 많은 편이 아닌데 sf소설이란 소개에 혹했다. 그리고 이 다섯 작가들이 나에겐 낯설다. 이름에 대한 저질 기억력 때문에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니 첫 작품이거나 단행본은 익숙하지만 읽지 않았거나 동명이인이었다. 안전가옥의 성향을 보면 이 다섯 작가의 다른 단편 등을 앞으로 다시 볼 가능성이 많다. 아마 그때도 인터넷 서점에서 열심히 검색할 가능성이 높다.
개인적으로 로맨스 성향이 가장 강한 단편은 한송희의 <사랑도 회복이 되나요?>였다. 기분영양제 비타무드를 복용한 후 연결되는 두 남녀의 결말이 예상되는 소설이다. 비타무드란 이름을 보면 어디에서 빌려온 것인지 바로 인식할 수 있다. 재밌는 설정은 예술가들의 빌라 거주다. 작품 활동을 하는 동안은 예술인 빌라에서 살 수 있다. 비연애주의자 영화감독 소혜가 비타무드를 먹은 이유는 잠을 자지 못해서다. 앞집에 이사온 서준은 늘 뛰는 모습을 보여준다. 서준도 비타무드를 먹는데 이유는 울고 싶어서다. 그는 배우지망생이기도 하다. 기분영양제의 부작용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려는 이 둘이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만 끌리는 모습은 전형적이다. 이 둘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장면과 상황은 재밌다. 아! 이 소설의 제목은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패러디 같다.
오정연의 <유로파의 빛을 담아>는 가장 sf소설 같다. 유로파로 떠난 우주인 정현의 이메일에 회신하는 현우의 이메일과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엮여 있다. 물리적 거리가 빚어내는 시차와 기억 속에 자리잡은 몇십 년 만의 연락이 상당히 흥미롭게 진행된다. 119안전센터 센터장인 현우가 자신의 일상을 말할 때 정현은 기억 속 상황들에 더 집중한다. 길지 않았지만 강렬했던 한 순간의 추억은 띄엄띄엄 전해져 온 소식과 이어져 있고, 이 연결은 강렬했던 첫사랑을 떠올린다. 그리고 마지막에 드러나는 사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이 앤솔로지에서 많이 다루고 있는 소재 중 하나다.
윤이나의 <아날로그 로맨스>는 통역기 란토와 리얼리티 연애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란토 덕분에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소통하는데 문제가 없는 근미래가 무대다. 연애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10개국 남녀를 선발했는데 자국어 외에는 사용할 수 없다. 당연히 통역기 란토도 사용불가다. 손짓 몸짓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야 한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준은 예전 애인 올리를 만난다. 의도적인 참여다. 이 방송에 참여한 후 올리와의 연애를 떠올리고, 란토 없는 현실에서 그 당시 자신이 놓친 것들을 깨닫는다. 언어, 표정, 몸짓 등과 사랑을 엮었는데 뒤로 가면서 재밌어졌다.
이윤정의 <트러블 트레인 라이드>는 인간의 기억과 인공지능을 연결해 죽은 가족이나 애인을 만족시키는 근미래를 다룬다. 이 소설 속 주인공 지은과 은수 등은 모두 AI다. 인간의 뇌 속에 있는 기억이나 감정 등을 한꺼번에 올려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기록과 남겨진 사람들의 감정과 결합해 만들어진 AI다. 이 AI가 다른 AI에게 끌리고, 다른 삶을 알게 되면서 생기는 상황을 그린다. 그리고 완성된 AI는 안드로이드에 들어가 주문자와 함께 살게 된다. 인공지능의 로맨스를 이렇게 그려낸 부분은 아주 신선하다. 이런 인공지능을 가진 안드로이드가 우리 주변을 채울 때 우리 삶은 또 어떻게 변할까?
김효인의 <오류의 섬에서 만나요>은 가상현실에서 정신을 치유하는 근미래 이야기다. 전직 축구선수 서이와 전직 수험생 도현이 오류가 난 섬에서 만난다. 원래대로라면 로그아웃해서 현실로 나가야 한다. 오류에 휘말린 두 사람은 자신들의 트라우마를 만난다. 이 과정에서 둘은 계속 만나고, 작은 위안을 주면서 자신의 트라우마를 마주한다. 자신들을 우울과 무기력 속에 집어넣은 현실을 보여주는데 아주 특별한 일들은 아니다. 우리가 조금만 눈을 옆으로 돌려 찾는다면 생각보다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조금씩 조심조심 서로에게 다가가는 과정이 오류 속에서 소소한 재미를 준다.
이 앤솔로지를 읽다 보면 작가가 의도적으로 성별을 표시하지 않거나 동성애를 편하게 그려낸 것을 발견한다.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미래도 보여주고,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동성의 끌림을 표현한다. 인공지능의 사랑도 있으니 미래에 펼쳐질 사랑의 다양성은 더 넓어진 것 같다. 안전가옥의 이 시리즈도 계속 관심을 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