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의 수리공
경민선 지음 / 마카롱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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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작가다.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장편 우수상을 수상하지 못했다면 뒤늦게 발견했을 작가다. 새로운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되면 인터넷 서점 검색을 하는데 이 작가의 장편은 현재 이 소설이 유일하다. 단편으로 안전가옥 앤솔로지와 내러티브온의 드라마편에 참여한 이력이 전부다. 물론 그 이전에 공모전에서 수상한 이력이 있는데 현재 출간된 책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이번 작품이 영상화되면 더 많이 출간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야기를 만들고 풀어가는 과정이 상당히 뛰어나고, 읽다 보면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고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의 관심이 현실이 아닌 가상현실로 많이 넘어갔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가상현실의 삶도 이어갈 수 없지만 점점 더 그쪽으로 사람들의 지출이 늘어난다. 이 소설의 작가가 주목한 것은 메타버스 같은 가상현실인데 기존과 다른 설정이다. 뉴랜드란 사후세계가 있는데 이 곳은 인간의 뇌를 대체현실과 연결한 세계다. 사람이 죽으면 뇌의 일부만 서브와 연결해 가상현실에서 영원히 살게 한다. 다른 소설들이 인간의 뇌 정보 등을 업로드해서 인격을 유지한 것과 달리 이 소설은 뇌의 한 부분을 연결해야만 한다. 기존 소설들의 방식이 더 앞선 기술이지만 과도기 정도로 생각한다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뉴랜드에 입주하려면 정해진 보험료를 모두 납부해야 한다. 영생을 살 수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아주 높은 보험료를 계속해서 낸다. 먼저 가족들을 뉴랜드에 보낸 사람들은 현실에서 그 보험료를 계속 납부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소모한다. 이들을 ‘부양 유령’이라고 부른다. 소설 속 주인공 지석도 이런 사람들 중 한 명이다. 병으로 죽은 전 여친 희진과 앞으로 입주해야 될 지 모르는 엄마와 자신을 위해 투잡을 하면서 보험료를 납부한다. 본업은 대체현실 수리 기사고, 부업으로 친구와 게임 속 체커로 활약하면서 보험료를 충당한다. 이런 평범하지만 암담한 현실을 살아가는 그에게 한 의뢰가 들어온다. 사후세계에 들어가서 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달라는 요청이다.


뉴랜드는 전 세계적인 시스템이다. 국가와 사기업이 결합해 운영하고 있고, 엄청난 보안 시스템을 갖추었다. 외부에서 침투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의뢰인은 뉴랜드 서버에 접촉할 수 있는 내부자다. 높은 수수료를 받고 몰래 들어간 뉴랜드의 모습은 현실의 재현으로 가득하다. 의뢰인이 요청한 곳에 가서 확인하니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뭔가 이상하다. 그는 여친 희진도 확인해보고 싶다. 다시 불법으로 접속해 확인해보니 희진의 집도, 희진도 없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 대체현실 속에서 그는 감옥에 갇히고, 무시무시한 살인자를 만나고 접속이 끊어져 그곳을 벗어난다. 그리고 뉴랜드에 대한 의혹을 품고. 그 비밀을 파헤치려고 한다. 물론 거창한 계획이 목적은 아니다. 희진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대학 시절 교수 오성학을 만나게 된 것은 그가 초창기 뉴랜드 사업에 관여했기 때문이다.


작가가 설정한 세계 속에서 뉴랜드의 입주자는 하나의 데이터일 뿐이다. 가만히 있는 데이터는 작은 용량을 차지하지만 움직이게 되면 서버 등에 무리를 준다. 서버를 증설하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지만 이것은 적지 않은 비용을 불러온다. 여기서 완납자와 미납자 사이의 차별이 생긴다. 최소한의 데이터를 발생시켜야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뉴랜드에서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은 이것과 관계 있다. 현실을 가상세계에 재현했지만 이전의 삶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움직임이 없어야 한다. 이 뉴랜드를 보면서 과연 이것이 인류가 머물고 싶은 사후세계가 맞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 소설대로라면 나는 들어가고 싶지 않다. 현실의 재현이라면 기득권이나 부자에게 더 유리한 세계일 뿐이다. 모두가 행복하게 살게 하기엔 비용이 너무 부담스러운 곳이다.


대체세계를 다루면서 액션을 넣어 눈요기 거리를 만들었고, 생각하지 못하 참혹한 현실을 집어넣어 망자의 부패를 불러온 부작용을 보여준다. 현실의 죽음 이후 영생을 살 수 있다는 욕망은 돈이란 가치 앞에 너무 쉽게 흔들리고, 보장된 권리를 되찾기 위한 연대는 참혹한 아름다움으로 표현된다. 영상화되면 가장 사람들의 눈길을 끌 체커들의 초능력은 액션과 더불어 최고의 눈요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후세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려면 얼마나 많은 비용이 필요한지에 대한 현실적 문제도 떠올릴 것이다. 지금 머릿속은 거의 대부분 인류가 디지털로 업데이트된 세계를 그려낸 소설의 한 장면과 이어진다. 재밌고. 잘 읽히고.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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