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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탈출 구역
김동식 외 지음 / 책담 / 2022년 1월
평점 :
일상을 주제로 유명 작가들이 쓴 청소년 SF 단편집이다. <일상 감시 구역>의 후속 작품이다. 전작과 동일한 작가들이 참여했다. 같은 작가들이 이런 식으로 참여한 것이 흔한 것 같지는 않다. 전작과 다른 점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김동식의 단편이 두 편이란 것 정도다. 물론 내용은 차이가 있다. 전작이 ‘감시’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에는 ‘탈출’이다. 그리고 이번 단편집은 이전과 다른 작가들에 더 눈길이 갔다. 이전에 투박하다고 생각한 김동식과 전작을 찾아보게 만드는 박애진 등이다. 김이환의 소설은 미스터리하게 풀어가면서 재미를 유지했다면 정명섭은 조금 아쉬운 전개를 보여준다.
김동식의 단편을 읽고 난 후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이전까지 읽었던 작품과 너무 다른 매끄러움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문장이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서 이전의 투박함이 사라졌다. 물론 재밌는 상상력은 그대로 유지된다. <하늘 문 너머>에서 거대한 우주선을 타고 나타난 외계인이 이 세상은 가짜라고 주장하고, 그 주장을 따라 하늘 문 너머로 사라진 이야기를 펼친다. 교통사고로 정신을 잃었다가 보름만에 깨어난 그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삶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해석에 따라 반전으로, 혹은 판타지로 이해할 수도 있다.
<로봇 교장>은 학교장으로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 온 후에 벌어진 일을 다룬다. 로봇을 교장으로 보낸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교칙이 너무 이상하다. 당연히 이 교칙에 의문을 품은 학생들이 작은 계획을 꾸민다. 기발하고 유쾌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박애진의 <우주를 건너온 사랑>은 어떻게 보면 전작의 연장선으로 볼 수도 있다. 전작이 미스터리 요소가 강했다면 이번에는 차별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시간의 상대성을 이용한 우주여행과 홀로그램 가수 이야기는 뻔하지만 흥미롭다. 소설의 주인공 중 하나인 소피아를 전작의 무대였던 곳 출신의 클론으로 설정한 것은 작가가 꾸준히 파고들 주제인 것 같다. 지구 출신 채림의 나이를 시간적 나이와 신체적 나이로 나눈 부분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풀어내는 다양한 소재와 마지막 마무리도 이전보다 월등히 좋아졌다.
김이환의 <구름이는 어디로 갔나>는 초대형 유람 우주선을 관리하는 슈퍼 인공지능 하드리아누스가 시스템 점검하던 중 연락이 두절된 로봇 구름이를 찾는 과정을 다룬다. 유람 우주선 곳곳에 존재하는 로봇들의 유쾌한 자기 소개와 애칭이 지루한 듯하지만 의미심장하다. 이 로봇들이 하는 일과 그 후의 일상을 보여주는데 인간 역사의 축소판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구름이를 찾아가는 과정은 실종자를 찾는 경찰의 조사처럼 하나씩 하나씩 나아간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넘어가면서 이루어지는 인터뷰는 처음에는 유쾌하지만 모두 읽고 난 후에는 씁쓸함이 남는다. 같은 농담을 반복하는 장면은 살짝 웃게 한다. 감상적인 결말이지만 독자의 성향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소설이다.
정명섭의 <아라온의 대모험>은 조금 아쉬운 소설이다. 지난 단편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준 작가인데 이번에는 너무 평범한 전개와 마무리를 보여주었다. 서로 다른 재능을 가진 쌍둥이 남매 아라와 라온과 지구온난화를 엮었는데 앞으로 펼쳐질 전개가 너무 눈에 들어온다. 몇몇 대목에서 지구 온난화가 불러올 위험을 보여주지만 이야기의 깊이나 기발한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작가가 아주 가까운 미래인 2047년을 배경으로 했다는 점은 천천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에 알려주는 각 나라의 이기적인 결정은 씁쓸한 현실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그리고 감시와 탈출을 다룬 다음 이야기는 무엇일지 궁금하다. 혹시 생활일까? 아니면 다른 이야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