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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송곳
조동신 지음 / 북오션 / 2022년 2월
평점 :
최근 앤솔로지를 통해 자주 만나는 작가 중 한 명이 조동신이다. 이 단편집에 끌린 이유는 작가 이름이 가장 크지만 한 군관의 눈으로 본 이순신 장군과 임진왜란을 엮은 미스터리란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처음 소개 글을 읽을 때 한 군관은 그냥 무시했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은 바로 그 군관인 장만호다. 이순신 장군이 첫 사건부터 그를 수사관으로 임명해 살인 사건을 해결하게 한다.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씌워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상당히 재밌다. 물론 간단하게 범인을 짐작할 수 있는 단편도 있지만 한 발 더 나아간 단편도 있다.
네 편이 실려 있지만 분량은 <편전>이 가장 많다. 다른 세 편을 합친 것보다도 길다. 다른 세 편이 단편이라면 <편전>은 중편 이상의 분량이다. 최근 경장편으로 나오는 소설과 비교해도 분량에서 뒤질 것이 없다. 개인적으로 장만호와 임진왜란 이야기를 더 풀어내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기에 몇 편의 단편이나 중편을 더 내어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사람들이 느낀 감정들이 아주 현대인의 시각을 담고 있는 부분도 있지만 곳곳에서 사료를 정밀하게 조사한 흔적들이 보여 잠시 잊고 있던 역사의 재미를 일깨워주었다. 이순신 장군이 주연이 아닌 강렬한 조연으로 등장하는 것도 재밌다.
첫 단편 <칼송곳>은 대장장이 시체가 바다 그물에 걸려 올라온 것에서 시작한다. 그는 좌수영 선소 소속 대장장이다. 왜군 간자가 거북선의 정보를 빼내려고 하다가 그를 죽인 것처럼 보인다. 좌수사 이순신 장군은 장만호에게 이 사건 해결을 명령한다. 경찰처럼 그는 사건 현장과 주변 사람들을 탐문한다. 그러다 사건의 단서를 발견한다. 그리고 이 사건은 임진왜란 이전에 발생한 것이고,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순신 장군이 부폐하고 나태해진 조직의 기강을 어떻게 바로 세우는지 간략하게 보여준다. 기존 좌수사와 다른 그의 업무 처리 방식과 능력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가장 긴 분량의 <편전>은 사건의 무대가 다대포다. 왜군이 조선을 침략한 그 순간부터 시작한다. 이 중편의 주인공은 두 사람이다. 한 명은 다대포에서 관비로 살면서 첨사 윤흥신에게 활을 배우는 나해고, 다른 한 명은 당연히 장만호다. 윤흥신은 장만호의 스승이다. 나해가 활 쏘기에 재능을 보이고, 그녀를 탐내는 첨사가 주장한 혐의로 벗는다. 선남선녀인 만호와 나해는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지만 조선시대는 엄연한 신분사회다. 노골적으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 작가는 곳곳에 둘만의 에피소드를 집어넣는다. 만호가 어떻게 혼인이 깨어졌는지, 왜 자신의 집이 아니라 윤흥신에게 오게 되었는지 설명하면서. 이런 이야기는 임신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다.
왜란이 일어난 후 조선의 군장들이 보여준 행동은 몇몇을 제외하면 처참할 정도다. 적선을 격침하기 위해 나가야 할 배를 스스로 침몰시키고 도망간다. 병력을 결집해 왜군을 막아야 하는데 도망가기 바쁘다. 그렇게 짧은 시간만에 왜군이 한성을 함락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가는 이런 대국적인 이야기는 빼고, 국지적인 부분에서 자신의 목숨을 바쳐 백성과 함께 왜군을 싸운 사람들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여기서도 왜군 간자를 등장시키는데 쉽게 알 수 있다. 이 중편에서 나해가 보여주는 활약은 이전에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박해일이 보여준 것과 비슷하다. 편전이 모양이 궁금해 인터넷 검색하니 그 영화에서 박해일이 쏜 활이다. 이 중편을 영화나 몇 부작 드라마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은혜 갚은 두꺼비>는 첩보 담당 장만호가 거제 현령을 만나기 전 일어난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다. 현령의 방에서 죽은 군관의 살인자를 찾는 이야기다. 이순신 장군의 해전 승리 이후 섬으로 달아난 왜구를 같이 토벌하자고 부탁하려고 간 것인데 오히려 그가 살인자로 의심을 받는다. 의심을 풀고 진짜 범인을 찾는 데 씁쓸함이 가득하다. 원균의 후퇴 명령을 따르지 않은 사연과 그 이후 일어난 일들 때문이다. <보화도>는 원균의 처참한 패배 이후 이순신이 복직한 후 이야기다. 영화로 제작되어 더욱 유명해진 명량해전 이후 이야기다. 전라 우수영의 한 군관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순신 장군은 이 사건 해결을 장만호에게 명령한다. 과학적 추론으로 범인을 한정하지만 이순신 장군의 지적을 들은 후 진짜 범인을 찾아낸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에서 가장 아쉬운 마무리가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