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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
에리카 산체스 지음, 허진 옮김 / 오렌지디 / 2022년 1월
평점 :
이 책을 선택할 때 두 가지가 나의 시선을 끌었다. 하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원작이란 것과 미국의 첫 라틴계 계관시인이 말한 “불완전함에 관한 완벽한 책”이란 엄청난 평가였다. 이런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한 소설은 생각보다 가독성이 좋았다. 죽은 언니 이야기를 시작으로 자신의 삶에 대해 하나씩 풀어나가는데 그 속에서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고 국경을 넘은 멕시코인들의 현실적인 삶을 마주한다. 시카고의 저소득계층이 사는 곳에 살면서 저임금의 힘든 노동을 하고, 힘겹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멕시코인들의 삶을 말이다. 그리고 태어나고 자란 미국의 영향력 아래 산 훌리아의 생각들이 기존 가치관들과 충돌한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담아 라틴계 소녀의 성장 스토리를 풀어놓았다.
훌리아에게는 언니 올가가 있었다. 올가는 휴대폰을 보다가 신호가 바뀐 것을 보지 못하고 차에 치여 죽었다. 이 사고는 가족을 아주 힘들게 한다. 특히 엄마가 더 심하다. 올가가 얼마나 가족을 위해 살았는지 말할 때마다 훌리아와 비교된다. 항상 조신했고, 부모님을 위해 먼 곳으로 떠나지 않았다. 부모가 보기에는 이상적인 딸이었다. 복장에 대한 설명을 보면 촌스럽다는 표현이 먼저 나온다. 이런 올가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언니 방을 뒤지다 예상하지 못한 속옷을 발견한다. 언니의 노트북을 열어 그녀의 삶을 한 번 들여다보고 싶지만 비밀번호를 모른다. 화려한 속옷은 훌리아가 몰랐던 언니의 삶을 추적하게 만든다. 단서는 언니의 친구들이 우연히 내뱉은 말들에서 시작했다.
가난으로 언니나 자신에게 성인식을 해주지 못한 부모가 언니의 죽음으로 성인식을 하기로 한다. 이미 나이가 지났는데도. 이 성인식을 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한데 이 가족에게 부담되는 일이다. 훌리아는 시카고를 떠나 뉴욕으로 대학을 가고 싶다. 하지만 엄마는 그녀가 이 동네를 떠나는 것을 반대한다. 훌리아가 언니처럼 순종적이고, 순결한 채로 멕시코인과 결혼하기를 바란다. 훌리아가 보기엔 이 모든 가치관이 구태이자 지독하게 편협하다. 삶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지 아직 알지 못하는 소녀에게는 더욱 그렇게 보인다. 그리고 그녀는 작가가 되고 싶다. 다른 과목보다 영문학을 더 좋아한다. 상당히 많은 책을 읽고, 헌책 냄새 맡기를 좋아한다. 코너를 만난 곳도 바로 헌책방이다.
방송에서 화려한 부자들의 사소한 고민이 그녀에게는 한달 집세가 되기도 한다. 엄마와 함께 백인들의 집 청소를 하러 갔을 때 마주한 백인들의 시선과 말투는 현실적이다. 훌리아의 시선 속에 부유한 사람들이 한 작은 액세서리 등은 항상 신분의 벽처럼 다가온다. 이 소설 속 멕시코인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 알려주는 대목 중 하나가 집안을 기어다니는 바퀴벌레 등이다. 어떤 부유한 백인은 아주 깨끗해 보이는데도 엄마를 불러 청소를 시키는데 말이다. 물론 아주 지저분한 집도 있다. 이 짧은 경험은 그녀의 생각을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이런 일들이 부모님들로 하여금 자식들이 사무직을 하길 바라게 한다. 육체 노동의 힘겨움과 낮은 임금에 비롯한 바람이다.
이 소설 곳곳에 라틴계들이 가진 삶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들이 살고 있는 미국 문화에 동화되지 못하고 겉돈다. 교육이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 범위를 한정한다. 훌리아는 영어 교사 잉맨 선생님의 도움으로 새로운 기회를 붙잡으려고 한다. 두 가치관의 충돌은 결국 문제를 불러온다. 일시적으로 부모의 권위로 딸을 묶어 둘 수 있지만 그 권위가 지속적이는 않다. 그리고 훌리아는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감정적인 말들을 쉽게 내뱉는다. 자신과 타인에게 모두 상처다. 결코 낯선 모습이 아니다. 나를 포함해 주변에서 자주 보는 모습이다. 여기에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이고, 억눌렸던 감정이 한 번에 터지면서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든다.
한 소녀의 성장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미스터리 요소도 하나 살짝 던진다. 바로 올가의 사연이다. 올가의 노트북 비밀번호를 우연히 발견한 후 메일을 뒤져 그녀를 비롯해 가족 누구도 몰랐던 올가의 다른 삶을 발견한다.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일이지만 이 사실을 부모에게 알릴 것인가 하는 고민은 또 다른 문제다. 그리고 밀입국 당시 일어난 일에 대한 사실 하나도 삶 속에 파묻힌 수많은 아픔 중 하나다. 훌리아가 멕시코에 가서 경험하게 되는 갱들의 폭력은 그곳의 삶 또한 얼마나 위험하고 불안정한지 잘 보여준다. 그들이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면서 국경을 넘는 이유 중 하나다. 한 소녀의 성장을 다룬 이 소설을 읽다 보면 현실의 수많은 문제들이 드러나고, 그 문제 속에서도 힘차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난다. 생각할 게 많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