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 이전의 샹그릴라
나기라 유 지음, 김선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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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지구 종말 전 모습을 다룬다. 소혹성이 충돌해 지구 멸망이란 흔한 설정이다. 지구 종말이란 표현보다 인류의 종말이란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지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최근에 이런 설정을 다룬 소설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사고 실험으로 달이 쪼개져 지구로 떨어져 인류가 멸망하는 설정도 있다. 이런 소설이나 영화의 경우 대부분 인류의 생존이나 보존에 초점을 맞춘다. 소혹성 출동이 예정된 상태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소설도 있다. 살아 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야기들이 주로 나오는 이 장르에서 이 소설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 남은 기한은 한 달. 이 시간 속에 각자의 사연이 흘러나오고, 가족이 만들어진다.


네 명의 화자를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낸다. 고등학생에서 시작해 야쿠자와 고등학생의 엄마를 지나 인기 초절정의 가수까지 이어진다. 앞의 세 명 이야기는 서로 연관성이 있지만 마지막 Loco는 조금 동떨어져 있다. 하지만 인류의 멸망 이전 마지막 무대를 펼치면서 멋지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읽다 보면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누군가의 죽음에 무뎌진 사람들의 감각이 나온다. 도덕과 윤리보다는 생존(?)이 우선이다. 죽을 날을 받아둔 상태에서 뺏고 빼앗고 죽이는 상황이 나오는데 인간이 지금까지 쌓아올린 문명이 얼마나 허약한 기초를 가졌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이 문명이 마지막 순간에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첫 이야기의 주인공 에나 유키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최고 미녀 후지모리를 짝사랑하고 있다. 그녀를 좋아하게 된 사연이 나오는데 이 일이 다시 그녀를 짝사랑하게 만든다. 후지모리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 Loco의 도쿄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을 돕겠다고 몰래 따라간다. 사회 기반 시설 일부만 운영되고, 폭력과 약탈과 강간 등이 판치는 현실에서 그녀의 기사가 되고 싶다.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깡패 메지카라 신지다. 싸움에 탁월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가정 폭력에 휘둘리면서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고, 자신의 감정도 다스리지 못한다. 머리 좋은 야쿠자의 도구가 될 뿐이다. 소혹성 충돌이 발표되기 전 받은 마지막 임무는 선배의 걸림돌이 될 야쿠자 중간 보스를 죽이는 것이다.


세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에나 유키의 엄마다. 그녀가 어떤 가정에서 자랐는지 간략하게 나오고, 어떤 마음으로 에나를 키웠는지 들려준다. 자신과 에나의 생부와 다른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 나오고, 삶이 얼마나 무겁고 힘든 지도 표현된다. 하지만 다시 이룬 가정과 Loco의 마지막 공연을 보러 가기 전까지 일상은 그녀가 오랫동안 꿈꾸었던 것이다. 마지막 장에 나온 Loco 이야기는 실패와 성공을 간략하게 풀어내면서 거대한 침몰과 멸망의 순간을 같이 놓아둔다. 성공의 가도를 달릴 때 몰랐던, 혹은 무시했던 감정들이 자신의 삶으로 돌아오는 순간 밖으로 표출된다. 외롭고, 두렵고, 거식증으로 고생하는 그녀의 비참한 삶이 조금씩 흘러나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 읽고 난 후 만약 나에게 이런 상황이 생긴다면 어떻게 행동할까 하고 묻게 된다. 일상을 이어가려고 하겠지만 아마 힘들 것이다. 사회 기반 시설을 유지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간략하게 나오는데 작가는 이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로 다른 할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단지 그런 이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방송이 중단된 상태에서 사람들이 정보를 업데이트 하는 방법은 SNS 같은 것밖에 없다. 확정된 멸망 아래 절망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은 다른 소설과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작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고, 행복한 순간을 즐기려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같이 보여준다. 진한 여운과 감동을 주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멋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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