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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여 오라 - 제9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
이성아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평점 :
제9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이다. 이 소설은 제주 4·3사건을 정면에서 다루지 않는다. 제주 4·3 사건의 피해자나 가해자에 파고들어 그 상처를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국가폭력에 눈길을 돌리면서 이 학살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세르비아 학살 등도 같이 다루고, 그 학살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군부정권이 사라진 후 등장한 김영상 정권 아래에서도 여전히 국가폭력이 존재했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란 사실을 주인공 조한나의 사연을 통해 드러낸다. 읽으면서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하고, 잊고 있던 기억들을 다시 환기시켰다.
이야기는 두 개의 축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조한나가 번역한 작품의 작가 마르코의 집에 머물면서 학살의 현장을 둘러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녀의 과거사를 현재까지 끌고 와 풀어내는 부분이다. 과거의 기억을 따라 올라가면 제주 4·3사건이 있다. 그리고 그녀가 독일 유학 당시 만난 대학 선배 기표와의 이야기는 다시 한국 현대사의 정치조작 사건과 이어진다. 예상하지 못한 전개다. 간첩단 조작사건의 피해자가 된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생략되어 있다. 단지 현재의 삶만 보여준다. 그리고 그 사건의 재판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그 재판을 보도한 언론이 얼마나 악의적이었는지 말한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감정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고 사실적이고 간결하게 알려줄 뿐이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는 <꽃보다 언니> 덕분에 한국에 많이 알려졌다. 유명 관광지 너머의 역사적 비극을 말한다. 그녀가 번역한 작품의 작가 마르코의 집에 머물고, 그와 대화하면서 구 유고슬라비아와 크로아티아에서 벌어진 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시기에 난민 문제가 생기면서 국경이 강화되고, 그녀의 국가 표기 때문에 생긴 작은 에피소드가 국가에 대해 잠시 생각하게 한다. 전쟁과 학살은 국가가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이다. 그 수행자들이 개인이라고 해도 그 권력을 쥐어준 것은 국가다. 조한나가 간첩단 사건으로 안기부 담당자의 폭력에 휘둘릴 때 그 담당 뒤에 가려진 국가폭력이 존재한다. 이 폭력과 유사한 것 중 하나가 홀로코스트 재판에서 나온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함’이다.
어느 순간 익숙해진 단어 중 하나가 ‘인종청소’다. 이 단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려주는데 함축된 단어의 위력을 쉽게 알려준다. 이후 이 단어가 다른 곳에서도 사용되었다. 인간이 저지르는 학살을 대표하는 두 단어 중 하나가 되었다. 국가 앞에 이런 폭력을 저지른 사람들의 감정은 어떨까? “죄의식은 늘 피해자들의 몫이야.”라고 말하는 대목은 가슴 깊이 와 닿는다. 국가의 억압에 의해 군에 차출되어 원하지 않는 살인을 하는 사람은 어떨까? 눈 앞에서 피를 쏟으면서 죽어가는 사람을 본 사람의 경우다. 이 느낌은 너무나도 강렬해서 그의 삶을 쥐고 흔든다. 삶에 이 사실을 숨긴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불쑥 불안과 공포가 찾아와 그를 흔든다. 그의 삶을 이해하는 한 모습이다.
그렇게 분량이 많은 소설은 아니다. 예상보다 훨씬 가독성도 좋다. 하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이야기들은 그냥 가볍고 빠르게 읽을 수만은 없다. 그리고 조한나 가족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나올 때 잠깐 숨을 삼킨다. 비극은 결코 한시적으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비극의 한 사람, 한 국가에 한정하지 않고 그 폭을 확대하면서 사유의 폭과 깊이를 늘인다. 그리고 시간 속에 생략된 이야기를 순간 떠올리면서 머리가 복잡해진다. 가볍게 이야기를 풀기에는 그 비극과 폭력의 희생자들 모습을 다른 곳에서 너무 많이 봤다. 자신이 당한 사건에 대해 재심청구를 둘러싸고 벌어진 몇 가지 이야기는 생각을 더 복잡하게 한다. 군부 독재가 사라진 후 민주화가 되었다고 말하지만 아직도 곳곳에 그 흔적들이, 유산이 남아 있다. 아직 새벽이 오기 전이다. 밤이 지나야 새벽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