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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바다의 라라니 ㅣ 미래주니어노블 9
에린 엔트라다 켈리 지음, 김난령 옮김 / 밝은미래 / 2021년 11월
평점 :
뉴베리상을 3년 동안 2번이나 수상한 작가다. 사실 이 문학상에 관심은 있지만 꾸준히 읽는 편이 아니라 그 정보를 띄엄띄엄 알고 있다. 이 소설을 선택할 때도 뉴베리상을 수상한 작가란 부분과 판타지 세계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읽고 난 다음에 알게 된 몇 가지 정보는 읽으면서 느낀 의문을 풀어주는데 도움을 많이 주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필리핀의 수많은 섬들의 신화와 전설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는 부분이다. 내가 가장 먼저 생각한 지역은 폴리네시아 섬들이었다. 작가 이력을 꼼꼼하게 확인하니 작가의 어머니가 필리핀 사람이다.
섬을 무대로 할 경우 그 섬의 크기를 언제나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려진 지도를 보면 라라니가 사는 산라기타는 그렇게 큰 섬이 아니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이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를 정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멘요로라는 지도자 투표를 봐도 그 숫자는 많지 않다. 많지 않다고 해서 그 섬 사람들의 삶이 다르지는 않다.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고, 땅에서는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른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자신의 능력에 따라 앞으로 할 일이 정해진다. 뱃사람, 배목수, 낚시꾼, 길쌈꾼, 빨래꾼, 농사일 등으로 나누어진다. 태어나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란 점이 조금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산라기타에 극심한 가뭄이 든다. 농사를 지을 수 없어 먹을 것이 귀해진다. 배급제가 실시되고, 이 가뭄이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 이 섬에는 한 가지 전설이 있다. 가려진 바다 너머에 있는 아이사산에 만복이 있다는 것이다. 섬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배를 타고 가려진 바다를 건너 아이사산으로 가려고 한다. 이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읽으면서 왜 이렇게 위험한 일을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인류의 개척 정신과 관계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전설과 관습에 의한 반복일까? 멘요로 투표에서 다른 의견을 내놓은 후보가 나오면서 다른 시각에서 이 일을 돌아보게 된다.
이 소설의 흥미로운 설정 중 하나는 이야기로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라라니가 들은 이야기도 나오고, 그녀가 들은 이야기를 전달하기도 한다. 그리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괴물 같은 존재들의 이야기가 같이 나온다. 이렇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하나의 시선만이 아닌 다른 시선으로 그 존재를 생각하게 한다. 이렇게 하면서 그 존재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든다. 단순히 라라니만 내세우지 않고, 사회의 필요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아이까지 등장시켜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덕분에 앞부분을 읽으면서 잠시 헤맸다. 익숙하지 않는 이름과 상황 덕분이다.
판타지 소설에서 항상 만나는 것이 모험이다. 자신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그들은 떠날 수밖에 없다. 집에서 키우던 가축을 찾아가다 들어가지 말아야 하는 카나산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아이사산 출신의 사람을 만난다. 그를 통해 비가 내리게 되지만 홍수가 날 정도로 내린다. 마법이 살짝 이야기 속에 끼어들고, 그와의 작은 다툼이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낸다. 사건은 변화를 요구하고, 이 변화 중 하나가 라라니가 배를 타고 떠나는 것이다.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항해를 떠난다. 그녀의 모험을 보다 보면 기존의 판타지 모험과 많이 다르다. 다르지만 그 모험은 위험이 있고, 친구가 함께 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의외의 장면으로 꼽고 싶은 것은 새롭게 뽑힌 멘요르를 몰아내는 장면이다. 섬 아이 중에서 가장 겁 많고 의지가 약한 것 같은 헤츠비가 낸 아이디어가 섬 사람들의 의지와 결합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든다. 자신들의 투표로 독재와 철권 정치를 불러왔지만 그들의 의지와 협력이 독재자를 물리친다. 그 방법도 그가 내세운 가치를 이용한 것이다.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들이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소설 곳곳에 구전 전설의 재미와 우리의 현실에 대비할 이야기 거리가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