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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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시자와 요의 소설은 자주 본다. 자주 본다고 쓰고 난 후 검색하니 올해 겨우 3권째 일뿐이다. 그런데 올해 출간된 책이 총 네 권이다. 다른 다작의 작가에 비하면 많은 편은 아니지만 편집자들의 눈에 작가의 소설이 눈에 들어온 모양이다. 가끔 이런 작가들을 만난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소설들을 재밌게 읽었기에 앞으로 더 나오길 바라지만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바랄 뿐이다. 이 단편집에 실린 다섯 편의 소설들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직관적인 트릭이나 공포가 아닌 한 템포 돌아가는 방식으로 풀어가는 서술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예정된 상황이 그대로 일어나는 서늘함도 담고 있다.


표제작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는 한 폐쇄적인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다룬다. 살인자는 화자의 할머니이고, 피해자는 고조할아버지다. 할머니 유골을 정리하기 위해 왔다. 과거 이야기가 하나씩 흘러나오는데 화가 날 정도다. 이 폐쇄적인 마을이 할머니를 왕따시켰는데 가장 큰 이유가 외지인이란 것이다. 시아버지가 치매가 있어 마을에 피해를 입혔는데 이것을 할머니 탓으로 돌리고 괴롭힌다. 무라하치부란 용어가 있을 정도로 과거에는 흔한 일이었던 모양이다. 여기에 경창까지 가세했다니 현대 사회가 무색하다. 화자가 하나씩 풀어낸 이야기를 듣다 보면 화가 나는데 이 이야기를 다 들은 그의 여자 친구가 이 살인 사건의 다른 면을 말한다. 여기에 살짝 착각 혹은 초자연적 상황까지 엮으면서 할머니의 강렬한 바람이 서늘하게 다가온다.


<목격자는 없었다>는 하나의 실수를 바로잡기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다 상황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을 다룬다. 초보적인 실수로 숫자를 잘못 쳐 좋은 실적을 쌓지만 이 사실을 숨기려고 한다. 실제 발주와 입력된 숫자의 차이는 자신의 돈으로 메운다. 문제는 이 사실을 누구도 몰라야 한다는 것이다. 열심히 변장해 배송까지 잘 했는데 교통 사고 현장을 목격한다. 정체가 들키지 않기 위해 바쁘게 달아난다. 그런데 이 사건이 제대로 된 목격자가 없다는 이유로 사실이 왜곡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이 소설의 제목대로 서늘하게 흘러간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과 더불어. 인간의 뒤틀린 집념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고마워, 할머니>는 첫 장면을 읽으면서 상황이 바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과거 속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미국에서 마음껏 먹다 살이 찐 손녀가 일본에 돌아온 후 뮤지컬 속 소녀를 보고 다이어트에 성공한다. 살이 빠진 후 예쁜 얼굴이 드러나고, 광고 등에도 나온다. 할머니는 손녀를 밀착 관리한다. 학교 생활도 막고, 먹고 싶은 것도 먹지 못하게 한다. 프렌차이즈 통닭집에서 무료로 먹을 수 있는 쿠폰까지 버릴 때는 어찌나 아깝든지. 그리고 첫 장면으로 돌아온다. 그 과거 이야기 속에 억눌려 있던 감정들이 어떤 상황을 만들어냈는지 알게 될 때 “고마워, 할머니”란 표현이 무서워진다.


<언니처럼>은 육아에 지친 언니가 아이를 죽였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화자에게 언니가 어떤 존재였는지 알려준다. 하지만 문제는 이 사건으로 그녀를 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를 위축시킨다. 아이가 짜증을 내고, 힘들게 달래지만 다음에는 더 심해진다. 그러다 손찌검을 한다. 오해가 겹치고, 피로도가 높아지고, 남편은 같이 아이를 돌볼 마음이 전혀 없다. 너무 흔하게 자주 본 모습이다. 이렇다고 모든 엄마들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상황이 되면 작은 실수가 큰 사고로 발전할 수 있다. 읽으면서 답답하고 불편하고 불안했다.


<그림 속의 남자>는 읽으면서 일본 고전 미스터리 한 편을 읽는 느낌이었다. 소재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등이 그렇게 느껴졌다. 상실의 고통을 겪은 화가가 그린 그림과 그 화가를 옆에서 지켜본 수집가가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내는 방식이다. 단순하게 화가의 광기를 다루지 않고 화가의 불행했던 과거를 같이 보여주면서 한 사건의 이면을 새롭게 해석해낸다. 이 해석까지 오는 과정을 보면서, 화가가 그렸다는 그림을 떠올리면서 인간의 복잡한 마음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걸작을 그리고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세간이 평가를 뒤집는 해석은 앞의 소설과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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