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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의 불편함
마리커 뤼카스 레이네펠트 지음, 김지현(아밀) 옮김 / 비채 / 2021년 11월
평점 :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장르 소설보다 시간이 훨씬 더 걸렸다. 읽으면서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들과 심리 묘사가 머릿속에서 의문 부호를 계속 던졌다. ‘진짜?’라는 물음이 나오는 것은 내가 사는 곳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강 건너 도시에 대한 반감이 나올 때면, 집 텔레비전을 상자 속에 놓아둔다는 이야기를 볼 때면 그들의 닫힌 세계가 기묘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한 가족이 보여주는 뒤틀리고 암울한 일상과 조금씩 공간을 잠식하는 광기가 계속해서 불편하게 다가왔다. 이것은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난 다음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3부로 나누어서 진행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1부에 나오는 맛히스 오빠의 죽음이다. 강에 스케이트를 타러 갔다가 얼음 속에 빠져 죽었다. 이때부터 엄마는 속된 말로 산송장처럼 살아간다. 무너진 일상과 닫힌 세계 속 소녀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자신의 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근친상간의 위험한 순간까지 나아간다. 시간이 흘러 농장에 구제역이 발생하면서 소들을 살처분해야 하고, 이 행위는 격렬한 반발로 이어지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시간의 흐름 속에 어둠은 더 깊이 일상 속으로 스며든다. 여기에 아이들의 자연에 대한 호기심 가득한 행동들이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큰오빠의 죽음과 함께 무너진 가정의 풍경, 오버 오빠가 보여주는 광기어린 행동들은 왜? 라는 질문과 함께 불편함을 계속 느끼게 한다. 남은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부모는 자신들만의 세계 속에 매몰되어 있고, 성경의 가르침을 제외하면 모두 배척한다. 이 덕분에 성 지식은 없어지고, 뒤틀리고 위험한 행위만 남는다. 야스가 변비로 고생할 때 아빠가 하는 치료법이란 것이 항문에 비누를 넣는 것이라니. 이 장면을 보고 열두 살 소녀의 몸이 이 가족에게 어떤 의미인지 엿볼 수 있다. 오빠와 동생들이 경악할 만한 행동을 하는 것은 또 어떤가. 이런 행동을 순진하고 호기심 가득한 문장으로 표현한다. 아이의 호기심을 빼고 상황만 본다면 잔인하고 경악할 일이다.
지독하게 금욕적인 삶을 강요하는 공동체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탈과 호기심 가득한 성욕은 부모의 관심이 사라지는 순간 위험해진다. 닫힌 세계 속에서 정보는 단편적이고 상상력은 괴상한 쪽으로 흘러간다.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은 얼굴을 찌푸리게 하고,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게 한다. 이런 분노는 폭발시키기보다 조용하고 차분한 묘사 속에 사그라든다. 멀어진 부모 사이를 보면서 아이는 순진하게 바라는 바를 표현한다. 순수한 표현 속에서 아이는 이전처럼 가족의 일상 회복을 바란다. 그러나 이 회복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그 이후를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문장도 그렇지만 내용도 쉽지 않다. 문장보다 표현하는 상황이나 감정이 더 머릿속을 복잡하게 한다. 작가 사진을 보고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선입견의 작용이다. 실제 학창 시절 이 때문에 작가가 고생한 모양이다. 뤼카스란 이름을 스스로 붙였고,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에서 벗어나고자 했다고 한다. 2020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연소 수상자다. 홍보 포인트 중 하나다. 만약 이 소설에 대한 이해를 더 깊이 하고 싶다면 책 소개와 언론에서 발췌한 평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담담하면서 세밀하게 묘사한 문장 속에 담긴 폭력과 잔혹함과 일상 속에서 평범한 듯 다루어진 광기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소설도 한 동안 머릿속에서 다양한 변주를 일으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