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선샤인 어웨이
M. O. 월시 지음, 송섬별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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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소설이다. 가독성도 좋고, 재밌고, 한 시대의 모습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읽으면서 감탄했고, 과연 둘의 운명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호기심을 자극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한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인데 그 대상이 누구인지 마지막에 드러난다. 그 과정에 한 소년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도 같이 나타난다. 어떤 대목을 읽을 때는 80년대 미국 청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1인칭으로 전개되는데 하나의 사건에 대한 미스터리를 파헤치면서 진행된다. 하지민 미스터리보다 더 시선을 끄는 것은 그 소년의 심미 묘사와 그 시대의 풍경을 탁월하게 묘사한 것이다.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주의 배턴루지란 마을이 배경이다. 나에겐 낯선 지명이지만 소설 속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어딘가 익숙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평화로운 마을이지만 1989년 여름에 발생한 한 강간 사건이 한 소년의 삶을 완전히 뒤흔든다. 당연히 그 피해 여성과 가족의 삶도 마찬가지다. 강간 당한 소녀는 육상부 스타 린디 심프슨이다. 주인공이 짝사랑하는 여학생이다. 동네에서 같이 놀면서 함께 자랐다. 어린 시절 이들이 함께 논 장면을 보여줄 때 그들의 순수함과 빛나는 모습은 지금도 머릿속에서 환하다. 이 찬란함이 한 비극적 사건과 엮이면서 뒤틀리고 추락한다.


성폭행 사건이 일어난 후 경찰은 열심히 범인을 수사했지만 잡지 못했다. 소년은 네 명의 용의자 있다고 말하면서 한 명씩 그들을 용의선상에서 지운다. 재밌는 점은 화자도 그 대상 중 한 명이란 것이다. 처음 경찰이 그에게 강간 사건을 물었을 때 그가 한 대답 때문에 용의선상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뜻도 모르고 그 단어를 사용하는 소년이니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소년이 린디에게 가지는 마음을 하나씩 풀어내면서 의혹의 불씨를 살린다. 엄마에게 결정적으로 의심을 사게 되는 것은 그가 숭배하고 사랑한 린디에 대한 자료 모음을 본 후다. 이 사건으로 이야기를 밀고 당기는 실력이 정말 좋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을 위해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린디가 강간당했다는 소식을 학교 친구들에게 퍼트린 실수까지 저지른 소년이라면 말이다. 그리고 이 사건과 소문이 한 소녀의 삶을 완전히 뒤흔들고 미래의 가능성까지 지워냈다. 탁월한 육상 선수였던 린디는 그 꿈을 포기하고 어두운 소녀가 된다. 그 소녀를 위로한답시고 소년은 린디처럼 외모를 꾸미고 비슷한 음악을 듣는다. 십대 소년이라면 흔히 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소년은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옆으로 다가가지 않는다. 주춤하고 두려워하고 경계한다. 생각만 하면서 나아가지 못한다. 이 떨리고 순수한감정이 가슴 속에 와 닿는다.


소설은 또 가족과 상실을 깊숙하게 다룬다. 린디의 사건이 그 가족을 뒤흔들고, 화자 가족의 경우는 아버지가 십대 소녀와 바람이 나 이혼한다. 여기에 누나까지 교통 사고로 죽으면서 상실은 더 깊어진다. 이 충격을 가장 많이 겪은 것은 엄마와 다른 누나다. 주변의 다른 가족의 경우는 입양아가 있는데 문제가 많다. 그 가족의 아버지 랜드리가 몰래 찍은 사진 한 장을 좋아라 하고 몰래 가져온 소년의 심리가 풋풋하지만 자라면서 이 사진의 의미가 달라진다.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바로 랜드리 가족과 관계 있다. 실수와 죄책감과 짝사랑의 감정이 뒤섞인 소년이 선택할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다.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새로운 진실을 밝혀준다.


작가와의 인터뷰를 보면 허리케인 카트리나 발생 후 뉴올리언즈와 배턴루지를 다룬 한 장에 엄청난 공을 들였고, 결코 지울 수 없다고 한 부분이 나온다. 자연재해 이후 바뀐 도시의 풍경과 그 상황을 둘러싼 사람들 이야기는 아주 인상적이다. 그리고 비교적 최근 이야기는 그의 현재 삶을 조금 드러낸다. 이렇게 조금씩 드러난 현재의 그가 완전하게 나오는 것은 루이지애나주립대가 미식축구에서 우승한 그 날이다. 이 날의 짧은 이야기는 그 힘들고 어두운 시간이 지난 후 성장한 소년의 모습을 아주 잘 보여준다. 어느 정도 학창 시절의 내 모습과 닮은 곳도 보인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성장한 것이다.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작가는 한 번도 주인공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읽는 동안 그 소년에, 그 시대에, 그 마을에 푹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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