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생활기록부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나혁진 지음 / 몽실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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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작은 착각을 먼저 말하고 지나가자. 제목에 붙어 있는 ‘생활기록부’란 단어 때문에 유령이 된 주인공이 학교에서 사건을 푸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죽음 이후 유령이 되고서야 살아보는 새로운 삶이란 소개는 순간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나의 나쁜 습관이 이런 착각을 불러왔다. 흔한 일이지만 늘 반복된다. 낯익은 작가의 작품일 경우 더 심하다. 그리고 소설 전체가 그의 죽음을 파헤치는 쪽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연작 소설의 형식을 가지고 있고, 평범한 추리력을 가진 유령의 활약을 보여준다. 평범하다고 하지만 집중력을 오랫동안 유지하지 못하면 해결하기 쉽지 않은 사건들이다. 왠지 작가의 경험과 생활이 많이 녹아 있는 것 같은 소설이다.


다섯 꼭지로 나누어져 있다. 각 꼭지의 제목이 아주 낯익다. 3장의 말 없는 사나이만 낯설고 다른 제목들은 영화 제목이 바로 떠올랐다. 주인공 허영풍이 연쇄살인범에게 살해되고, 유령이 된 후 마주한 사건들을 다룬다. 읽으면서 왠지 모르게 일본 소설이나 만화가 떠올랐다. 정확하게 어떤 제목이 확 떠올랐으면 좋겠는데 희미한 기억만 있다. 소설의 시작은 그가 연쇄살인범에게 죽는 장면부터다. 그는 그 살인범을 보지 못했고, 왜 유령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 유령에게 재밌는 설정을 몇 개 덧붙였다. 바로 죽기 직전의 체력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유령이니 하루 종일 걸어도 되고, 잠을 잘 필요가 없지만 머리에 각인된 기억은 무의식 중에 행동으로 나타난다.


죽으면 누구나 유령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교통 사고 당한 노인이 유령으로 나타나지 않았고, 집에서 죽은 초등학생의 경우는 유령이 되었다.초등학생이 죽은 후에도 유령으로 학교에 가고, 집에서 잠을 자는 등의 행동을 반복하는데 인간에게 각인된 학습의 효과를 아주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우리가 무의식 중에 하는 수많은 행동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된다. 중학생만 되어도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란 작가의 지적에 동의한다. 죽음의 비밀을 밝히는 순간은 무겁지만 전체 분위기는 찌질한 백수의 일상을 나열한다. 그가 죽은 후 셋방에 들어온 경찰들의 간결한 조사를 보고 순간적으로 살짝 웃었다. 한때 커뮤니티에서 유행했던 유머가 떠올랐다.


2장 사랑과 영혼에서 ‘뭐지?’ 하는 문장을 하나 읽었다. 그가 유령 생활 20년 동안 유일하게 물리력을 발휘한 순간이란 표현이다. 아니 20년 동안 자신을 죽인 범인을 잡지 못하고 떠돌이 유령 생활을 했단 말인가? 유령이 되어 못 갈 곳이 없어진 그가 5년 전 헤어진 여친을 찾아간 것은 생전의 미련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 <사랑과 영혼>의 일부와 닮아 있다. 영풍의 과거가 일부 흘러나오고, 후회와 질투의 감정이 넘실거린다. 이번 장을 보면서 나의 감정을 살짝 대입했는데 나도 그와 별 차이가 없을 것 같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바탕으로 타인을 바라본다는 것을 곳곳에서 보여준다. 시간의 제약이 없는 그가 대학 동창을 만나러 가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 것이 ‘말 없는 사나이’다. 친구 혀가 근무하는 우유 회사의 밀어내기를 보면서 머릿속에 남양유업이 떠올랐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흘러나오는 진짜 이야기는 영풍의 학창 시절과 저 잘 생겼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친구의 잿빛 얼굴의 이유를 알게 된다.



연쇄살인의 피해자가 유령이 되어 일상의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보통 이런 설정이라면 자신의 죽음에 대한 원인을 파헤치고, 범인 잡기에 빠져야 하는데 그 부분은 살짝 빗겨간다. 가지 못하는 곳이 없어지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모두 한 듯한 부분이 마지막 장에 나오는데 투명인간이 되면 할 것들 같은 일들이 많다. 그 중 일부는 속된 말로 귀신만 아는 사실일 뿐이다. 물리력을 발휘할 수 없다 보니 보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동료 유령들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살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한다. 물론 예외 적인 상황 두 개가 단편 속에서 다루어진다. 전체적으로 무겁지 않고, 찌질한 주인공의 삶을 잘 보여줘서 공감하는 부분도 많다. 소소한 유머가 주는 재미도 상당하다. 지금까지 읽은 작가의 소설과 다른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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