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
요 네스뵈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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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한 두께다. 748쪽이나 된다. 최근에 이런 두께의 책을 조금 멀리하고 있다. 체력이 조금 달리는 느낌이고, 완독에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간 많고 체력도 상대적으로 좋았던 시절이라면 이 책을 이틀 정도면 달렸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최소 하루나 이틀 정도 시간이 더 필요하다. 재미가 없다면 이 시간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요 네스뵈라면 다르다. 앞 이야기는 이런저런 이유로 빠르게 읽지 못했지만 후반부는 책을 손에서 내려 놓을 수 없었다. 출근해야 하는데, 하면서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역시’라는 단어를 내뱉는다. <아들> 이후 오랜만의 스탠드얼론 작품이라 더욱 좋았다.


카인과 아벨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바이블>의 이 이야기는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서 재해석했다. 형제와 가족 이야기를 다룰 때 이것처럼 강렬한 이야기는 흔하지 않다. 가족에 대한 환상을 오래 전에 깨트렸지만 현실에서 가족은 무시할 수 없는 관계다. 이 소설 속 두 형제, 로위와 칼도 그렇다. 형 로위는 노르웨이의 작은 마을 오스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면서 살고, 동생 칼은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후 캐나다에 머물다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칼의 곁에는 아내 새년이 있다. 칼이 고향에 돌아온 이유는 부모님이 물려준 땅에 거대한 호텔을 짓기 위해서다. 이 프로젝트는 마을 사람들의 도움과 참여가 필요하다. 로위가 바라는 것은 자신의 주유소를 소유하는 것이다. 칼은 부모가 물려준 땅값으로 이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꿈은 사업계획을 발표하는 그날 밤 깨진다.


동생 칼이 호텔 사업을 들고 오스에 나타나는 순간 로위의 평화는 깨진다. 로위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동성애자가 아닌가 하는 의혹을 사는 인물이다. 칼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 아버지가 운전하던 캐딜락이 후켄 벼랑으로 떨어져 두 분 모두 돌아가셨다. 이 죽음을 둘러싼 의혹을 수사하던 경찰도 마을의 호수에서 사라졌다. 현재 그 아들 쿠르트 올센이 마을의 경찰이다. 그는 아버지가 사라진 이유를 계속 추적하는 중이다. 그 단서 중 하나가 마지막으로 휴대폰 신호가 잡힌 곳이다. 로위의 부모님이 떨어진 벼랑이다. 올센은 이 두 형제의 과거를 계속 파헤치고 외부에서 긴장감을 불어넣어주는 존재다. 작은 허점이 드러나면 당장 달려들어 이 형제를 감옥에 가둘 인물이다. 올센의 올바른 추적보다 로위의 감정에 더 공감하면서 긴장하는 것은 작가의 필력 때문일 것이다.


평화롭던 로위의 삶은 이제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작가는 그 과정을 과거로부터 길어 올려 하나씩 보여준다. 매력적인 칼을 호위무사처럼 지키는 모습과 동생과 사귀었던 마리에 대한 짝사랑 등을 먼저 보여준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 하나를 풀어내면서 차량 사고의 이유를 알려준다. 가족이란 이름 아래 저지른 추악한 행위는 또 다른 살인으로 이어진다. 이 살인이 한 번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불안과 욕심 등이 엮이면서 계속 이어진다. 이 모든 것이 가족을 위해서다. “우리가 믿을 건 가족뿐이야.” 란 대사가 로위에게는 거대한 짐이 된다. 동생 칼을 위해, 자신을 위해 그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가 놓친 몇 가지 행동은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전반부의 이야기가 무겁게 독자를 짓누른다면 후반부는 로위의 숨겨진 연인들을 보여주면서 조금 밝아진다. 동생에게도 숨긴 자신의 비밀 연애다. 그의 첫 연인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 전 순진한 숫총각을 꼬시는 미국 부인의 이야기와 닮았다. 이 연애는 그가 동성애자가 아님을 알려준다. 유부녀와의 연애이니 숨길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다른 여자들을 만날 수 있는데 왜 그는 이런 행동을 한 것일까? 마을에 나쁜 소문이 돌지만 그는 자신의 일을 할 뿐이다. 언젠가 주유소를 소유하겠다는 꿈과 함께. 실제 그가 운영하는 주유소의 실적은 상당히 좋다. 다른 주유소를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의 연애사가 흘러나오는 순간이다.


가족과 가문을 위해서라면서 벌이는 잔인하고 추악한 행위를 많이 봤다. 이런 행위는 언제나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한다. 칼의 실수나 탐욕이 문제를 일으키면 이 뒤처리를 로위가 한다. 이 뒤처리를 보면서 그가 얼마나 뛰어난 살인자인지 잘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로위가 살인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만 그가 살인을 저지른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다. 그리고 칼의 아내 새년이 후반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녀는 바베이도스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마지막 장면에서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불어넣어준다. 그녀가 가족이 되었음을 알려주는 대목으로 가족의 비밀을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섬뜩하다. 이 비밀 공유는 은연중에 공범자로 만든다. 작가 특유의 정밀한 구조와 설정들이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다. 현재는 로위에 집중해 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른 인물과 설정들도 하나씩 깨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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