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수집노트 - a bodyboarder’s notebook
이우일 지음 / 비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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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 전 인터넷서점에서 작가 이름으로 검색을 하니 나에게 낯선 책들이 무수히 나타난다. 그가 그림으로 참여한 책 제목들이다. 이우일을 처음 에세이 작가로 인식한 것이 <퐅랜,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우린>이었는데 가끔 이렇게 그의 본업을 잊는다. 아내 선현경의 에세이 <하와이하다>에 그림으로 참여한 것을 본 것도 이런 착각을 더 부채질했다. 사실 그는 그림작가로 대단한 명성을 얻고 있다. 내가 무지해서 잘 몰랐지만 제목은 자주 들었던 책들이다. 그림작가라는 직업이 그가 해외에 몇 년 동안 머물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부럽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와이 생활을 접고 한국에 귀국해 하와이에서 배운 부기보드를 탄 이야기를 이번에 내놓았다.


무식하고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내가 한국에서 보드를 탄다고 하면 한국 파도가 탈 정도가 되나 하는 생각을 먼저 했다. 동해에서 서핑을 한다고 할 때 내 머릿속은 영화 등에서 본 멋진 배럴을 만드는 파도만 떠올랐다. 동해 파도를 제대로 본 적도 없고, 서핑은 하나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가 보여준 우리나라의 주요 서핑 스폿은 생각보다 많았고, 생각보다 많은 서퍼들이 그곳에서 파도를 탄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생각을 다르게 하게 했다. 거대한 파도가 아니라도 바다 위에서 파도를 탄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이 책에서 자주 나오는 겨울 바다라면 더욱 그렇다. 책을 읽다 보면 파도 타기에 대한 열정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50대가 이렇게 몸으로 하는 일에 열정적으로 달려들기는 쉽지 않다. 그것도 위험한 일에.


이 에세이에 그림작가 이우일의 네 컷 만화가 많이 실려 있다. 주로 ‘미래의 나’가 등장해 현재와 과거의 나와 대화하는 것인데 상당히 재밌다. 과거의 내가 전혀 생각조차 못한 일을 하는 현재의 내가 등장한다. 미래의 내가 보기엔 현재의 나는 아주 미숙하다. 시간은 종종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우릴 이끈다.  장롱면허가 어떻게 운전대를 잡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대목을 보면서 필요가 만들어낸 현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좋아하는 파도를 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운전대를 잡아야 했던 그를 보면서, 혹은 그 옆에 앉은 그의 아내를 보면서 내 경험 중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이전에 그를 태우고 다닌 그의 아내의 노고에 또 다른 과거가 떠올랐다.


서핑에 대한 그의 경험을 상당히 간결하고 담백하게 그려낸다. 자신의 느낌을 잘 포착해 간결한 문장에 유머를 담아 풀어내었는데 개인적으로 한 템포 늦게 웃게 된다. 위대한 힘에는 항상 큰 책임이 따른다는 거창한 말과 달리 현실은 소소하다. 서퍼들이 바다 위에서 눈치를 보는 것이나 하는 사소한 행동들이 나의 머릿속에 콕 박힌다. 시계를 찬 그에게 시간을 묻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란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 실제 파도를 타는 시간은 하루 종일 바다에 나가도 몇 십 분이 되지 않는다. 파도를 타기 위한 준비 과정이 상당히 길게 걸린다. 겨울 바다에서 파도를 타기 위해서는 두툼한 옷도 필요하다. 장갑도 필수다. 이것을 잊고 나와 다시 호텔로 돌아간 이야기는 요즘 자주 깜박하는 나를 떠올린다.


상어보다 해파리가 무섭다는 것은 현실 바다의 상황을 잘 알려준다. 한국이라면 더욱 그렇다. 바다에서 오줌을 참는 그를 보면서 생각하지 못한 행위에 놀란다. 그의 아내가 집게로 해변의 쓰레기를 줍는다는 작은 언급은 더욱 놀랍다. 바다 위에서 파도에 휩쓸려 죽을 뻔한 사연을 읽을 때면 순간의 올바른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임을 알게 된다. 우린 가끔 사소한 것에 목숨을 너무 건다. 일기와 만화와 에세이가 한 곳에 녹아 있다. 담담한 글쓰기는 천천히 그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본 풍경 묘사는 우리 삶에도 적용 가능하다. 작가는 파도타기를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고, 도전하게 한다. 그럼 나는? 이 책에 실린 그림들도 작가가 처음 시도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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