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에 폐허에 눈이 내릴까 - 김수영 탄생 100주년 기념 시그림집
김수영 지음, 박수연 엮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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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시인 탄생 100주년 기념 시그림집이다. 오래전 시화전을 몇 번 본 적은 있다. 시그림집은 처음이다.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시그림집이 아니고 김수영 시인의 시들이다. 예전에 한 번 도전한 후 이해하지 못해 포기했던 시들이다. 김수영을 인용하고 찬양하는 작가들을 자주 보다 보니 그의 시에 대한 관심이 늘 있었다. 강신주의 <김수영을 위하여>를 구해 놓고 오랫동안 묵혀 두고 있는데 이 관심 때문이다. 그의 시전집도 사 놓은 것 같은데 찾지는 못하겠다. 이번 시그림집에는 <김수영 전집 1 시>와 다른 편집을 한 시들이 상당히 나온다. 단어나 행구분이 대표적이다. 시를 읽을 때 늘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행 구분이 의미하는 바이다. 아직도 잘 모른다.


80편의 시를 열 개의 꼭지로 나누었다. 해설을 보니 그의 마지막 시가 <풀>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나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가장 강렬하게 남은 김수영의 시다. 다른 곳에서도 자주 본 시다. “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풀> 부분) 이 낯익은 시어들을 다시 만난 시들은 거의 없다. <거대한 뿌리> 같은 경우는 시집 제목으로 기억한다. 이 시를 읽으면서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것은 판타지 소설 속 세계수 같은 이미지다. 그런데 그냥 굵은 뿌리만 그렸다. 서로 다른 시각을 경험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시가 어려웠다. 나의 한계다. 철학자나 시인이나 소설가들이 그의 시집을 얼마나 열심히 읽었는지 봤기에 이 부분은 상당히 아쉽다. 아마 다음에 또 한 번 더 도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간이 된다면 <김수영을 위하여>를 먼저 읽을지 모른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사실 나의 기억을 상당히 조정하게 되었다. 그의 너무나도 직설적인 시어들이 아주 낯설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담은 시어들이 욕과 함께 나오는 경우도 많다. 이때도 이런 시어들을 썼다는 사실에 놀란다. <“김일성 만세”> 같은 시는 현대 한국 정치를 생각하면 정말 발표하기 어렵다. 실제 이 시는 21세기가 되어서 발표되었다.


참여를 다룬 시는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김수영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아아 새까맣게 손때 묻은 육번전서가 / 표준이 되는 한 / 나의 손 등에 장을 지져라 / 4.26 혁명은 혁명이 될 수 없다 / 차라리 / 혁명이란 말을 걷어치워라”(<육법전서와 혁명> 일부)고 말하는 대목을 보면서 그 날카로운 통찰력에 놀랐다. <“김일성 만세”>에서 이 단어를 한국 언론자유의 출발로 인정하라고 한 부분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 시대 이런 시가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이다. 실제로는 이 시가 사후에 알려졌다.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시집의 제목은 이 시그림집 마지막 시인 <눈>의 마지막 행이다. 이미지를 떠올리면 황량한 폐허 하나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 책에 담긴 시그림집들은 개인적으로 나의 이해와 취향과 많이 다르다. 직관적으로 그린 그림들도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야 하는 그림도 많다. 시와 그림을 다시 한 번 더 봐야 한다. 역사, 생활고, 사회문제, 희망, 기대, 자기반성 등을 그는 어떤 순간에는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욕설이 난무한다. 어떤 시는 여성 비하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나의 오독도 있고, 시대의 한계도 있을 것이다. 최근 시를 읽으면서 이제 시가 조금 이해되는 것처럼 보였는데 나의 착각이었음을 이번에 또 확인한다. 얼마 전 한 시집을 읽다가 난해해 잠시 중단한 적도 있다. 다시 또 그냥 계속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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