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북클럽이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방식
그래디 헨드릭스 지음, 강아름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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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한 책이다. 공식적으로 668쪽이다. 최근 이런 두툼한 분량을 조금 힘들어 하는 편이다. 재미와 상관없이 책 읽을 물리적 시간이 줄어들면서 이런 두툼한 책들을 의식적으로 멀리한다. 그래도 좋아하는 작가나 관심 있는 소설의 경우는 어쩔 수 없다. 이 책도 두 가지가 나의 시선을 끌었다. 하나는 호러북클럽이고, 다른 하나는 뱀파이어다. 북클럽 활동을 해 본 적이 없지만 책 읽기를 좋아하고, 이런 장르도 좋아하니 제목이 나를 유혹한다. 내가 얼마나 이런 유혹에 약한가. 그리고 목차에 나오는 낯익은 책 제목들은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물론 읽은 책은 몇 권 없다. 모르는 책도 있다.


호러북클럽이 뱀파이어를 처단한다고 했을 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이미지는 뱀파이어를 처치하는 북클럽 회원들의 액션 활극이었다. 그런데 소설은 나의 기대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뱀파이어로 추정되는 인물이 등장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이 뱀파이어와 이웃한 시간도 적지 않다. 목차에 나온 시간은 소설 속 시간의 흐름과 이어져 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던 논의 장면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속 남자 주인공을 둘러싼 논쟁이다. 그가 연쇄살인범이라고 주장하는 억지 대목을 보면서 이전에 고상한 책으로 자신들의 기호를 속였던 장면이 떠올랐다. <울어라, 사랑하는 조국이여>를 읽지 않고 참석한 북클럽과 달리 새롭게 결성된 북클럽은 피가 난무하는 책들이 많다. <사이코> 등은 어울리지만 달콤한 로맨스는 어울리지 않는데 왜 선택했지 하는 의문은 그들의 작은 논쟁 속에 나온다.


전직 간호사였던 퍼트리샤는 남편과 두 아이와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와 산다. 호러북클럽은 그녀의 작은 즐거움이다. 그녀의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는 와중에 옆집 노부인이 그녀를 공격해 귀를 물어뜯는다. 겨우 노부인을 물리쳤는데 죽었다. 그리고 노부인의 조카라고 말하는 제임스가 등장한다. 퍼트리샤와 제임스의 첫 만남은 아주 인상적이다. 퍼트리샤는 집안에 누워 있는 제임스가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인공호흡을 한다. 그가 놀라 깨어난다. 읽다 보면 이 소설 속 뱀파이어가 제임스란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햇볕을 싫어하는 그의 성향과 증명서가 없다는 사실 등이 의심을 가중시킨다. 반면에 교묘하게 퍼트리샤의 동정을 사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하나씩 이룬다. 미국 남부도시 찰스턴의 올드 빌리지에 뿌리를 내린다.


제임스의 등장에 가장 격렬하게 반대한 인물이 있다. 치매에 걸린 미스 메리다. 그녀는 제임스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면서 그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고 말한다. 나중에 미스 메리는 금주법 시대 자기 아버지를 죽게 만든 사연을 퍼트리샤에게 말해준다. 그의 이름은 호이트이고, 미스 메리는 그의 사진을 가지고 있다고 외친다. 하지만 치매 걸린 노인의 말에 신경을 쓸 사람은 많지 않다. 늙지 않는 뱀파이어는 소설이나 영화 속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퍼트리샤를 둘러싸고 스산하고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작은 공포들이 조금씩 조금씩 그들 곁에 다가와 안으로 파고든다. 직접적이고 화려하지 않지만 조금씩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우리 곁에 있는 뱀파이어는 결코 조급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하루의 절반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그의 정체가 밝혀지면 금방 퇴치될 수밖에 없다. 그가 저지르는 행위는 호러북클럽 회원들이 즐겨 읽는 연쇄살인범의 행위와 닮아 있다.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욕망을 이어가야 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만 그 정체를 알 수 있다.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잡을 수도 없고, 잘못하면 달아나 버린다. 작가는 이 둘을 묘하게 엮어서 한 이야기 속에 녹여내었다. 북클럽의 아줌마들이 뱀파이어를 처단하기 위해서는 힘을 합쳐야 한다. 현대 문명은 이런 협업 속에서 이루어졌다. 마지막에 제임스가 마을에 정착하게 도와주면서 교환한 2350달러 이야기가 나오는데 왠지 짠하다. 작가의 다른 책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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