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자의 일기
엘리 그리피스 지음, 박현주 옮김 / 나무옆의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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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에드거 상 최우수 장편소설상 수상작이다. 작가의 이력을 간단히 보면 화려한 수상 경력이 나온다. 이런 화려한 수상 작가도 가끔 나와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 작가는 아니다. 에드거 상을 받아 기대를 하면서도 고딕 문학의 전통이란 대목이 약간 걱정거리를 던져 주었다. 이런 걱정은 진도가 나가면서 점차 사라졌다. 대단히 빠르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지만 천천히 이야기를 쌓아가는 과정이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여기에 가상의 작가와 가상의 소설을 만들어 둘의 연관성을 만들었다. 그리고 책 마지막에 R.M 홀랜드의 <낯선 사람>이 실려 있다.


이야기는 세 명의 여성 화자를 내세워 진행한다. 홀랜드를 연구하며 교사로 살아가는 클레어, 클레어의 딸 조지아, 살인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 하빈더 등이다. 클레어, 하빈더, 조지아 순으로 진행되다 클레어의 순번이 한 번 빠진다. 왜일까? 고딕 문학의 전통이 3의 반복이라고 했는데 여기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옮긴의 말에 나온다. 이런 전통보다 나의 시선을 더 끈 것은 엄마가 잘 모르는 딸의 모습이다. 클레어도 딸 조지아 하얀 마녀라고 부르는 여성에게 글쓰기를 배운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빈더의 엄마도 딸이 동성애자란 사실을 모른다. 딸들이 사실을 숨겼다고 하지만 우리가 흔히 하는 착각 중 하나인 내 새끼는 내가 잘 안다는 믿음을 그대로 깨뜨린다.


<낯선 사람>의 도입부로 이야기의 문을 연다. 그리고 한 여교사의 죽음을 알린다. 클레어의 절친 교사인 엘라가 살해당했다. 엘라는 학교의 학부장 릭과 잠을 잔 적이 있다. 속된 말로 공공연한 비밀이다. 처음 이 사건을 맡은 하빈더는 모든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 절친 클레어도 마찬가지다. 처음 클레어를 봤을 때 하빈더는 약간 삐딱하게 쳐다본다. 클레어의 마르고 큰 키와 풍기는 표정이 선입견을 심어주었다. 이 약간의 반감은 사건이 더 일어나고, 서로의 감정을 교류하면서 어느 순간 사라진다.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일이 생기고, 의심의 씨앗을 사라지게 만들 사건도 생긴다. 가장 큰 역할은 하는 것은 역시 허버트다. <낯선 사람>에도 같은 이름의 개가 등장한다.


친구의 죽음으로 고통을 받는 역할이 클레어라면 하빈더는 드러난 증거를 가지고 범인을 잡아야 한다. 증거가 많고 분명하다면 쉽게 범인을 잡을 수 있겠지만 이 살인자는 증거 물품을 남기지 않았다. 두 번째 살인이 일어났을 때 그 시체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이 클레어인데 그 과정도 재밌다. 약간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있지만 시체가 이 작은 낭만을 산산조각낸다. 두 번째 살인은 <낯선 사람>의 죽음과 동일한 방식임을 알려준다. 그리고 클레어의 일기에 기록된 낯선 사람의 말들. 지옥은 비었다. 서늘한 표현이지만 이 문장은 <맥베스>에 나오는 문장이다. 두려움에 떨며 다른 기록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동일범의 소행이다.


클레어가 화자로 나올 때 일기는 또 하나의 도구다. 그녀의 내밀한 기록을 읽은 하빈더가 학교의 상황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두 번의 장례식과 새롭게 드러나는 과거의 사실들이 상황을 한 번 꼰다. 조지아의 분량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딸의 시선으로 엄마를 보게 하고, 용의자 중 한 명을 조용히 지우는 역할을 한다. 어른과 다른 위치와 시각에서 상황을 본다. 인도 시크교 신자인 부모와 함께 사는 하빈더는 소설을 읽으면서 그 매력이 하나씩 드러난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커밍아웃했고, 사건을 해결하려는 열정이 가득하다. 관찰력이 뛰어나고 영국에서 인도계들이 흔히 겪게 되는 일들을 알려준다. 하빈더를 주인공으로 한 다른 소설이 출간되었다고 하니 기대해본다.


고딕 문학의 분위기를 풍기다 보니 빠른 전개나 무시무시한 긴장감을 불러오는 부분은 약하다. 개성 강한 등장인물들이 흡입력을 발휘하고, 각 장마다 나오는 <낯선 사람>에 대한 좀 긴 인용은 분위기를 더욱 어둡게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범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찾은 방식은 소설 속 등장인물들 중 범인이 있고, 아닌 사람을 하나씩 지우다 보니 그때 딱 그가 떠올랐다. 작가는 마지막에도 약간의 트릭을 사용한다. 재밌는 것은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상황이다. 현대 스릴러의 긴장감이나 속도감을 내지는 못하지만 고딕과 견실한 스릴러가 만들어내는 재미는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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