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가족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4
김하율 지음 / 폴앤니나 / 202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낯선 작가다. 최근 낯선 작가들의 단편들을 많이 만나고 있다. 그 대부분은 앤솔로지를 통해서인데 가끔 그들의 단편집을 읽는다. 이 앤솔로지들의 특징은 장르소설이란 점이다. 오래 전에는 쉽게 만나볼 수 없었던 여러 작가의 단편모음집이 이제는 흔하게 볼 수 있다. 특정 작가의 단편이 궁금해서 선택했는데 예상하지 못한 작가의 단편에 눈길이 가는 경우가 자주 있다. 좋은 현상이다. 사실 이 낯선 작가의 단편집에 눈길이 간 것도 sf장르의 앤솔로지에 실었다는 글을 본 다음이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취향이 점점 한쪽으로 기울고 있다.


모두 일곱 편이 실려 있다. 황당하고, 기발하고, 웃기고, 슬프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놀란다. 설정 자체가 황당해서 뭐지?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실에 대한 강렬한 비판이 심어져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표제작인 <어쩌다 가족>과 <판다가 부러워>이다. 이 두 작품은 부동산 가격 폭등과 전세난은 소재로 삼고 있고, 마지막 장면은 예상하지 못한 임신 상황을 만들면서 마무리한다. 결국 이 임신이 그들이 예상하고 기대한 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축하받아야 할 임신이 상황에 따라 결코 축복받을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이 장면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지만 보는 순간 이 웃픈 장면이 가슴에 푹 박혔다.


모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이 둘 있다. 하나는 <마더메이킹>이고, 다른 한 편은 <그녀의 이름을 보았다>이다. <마더메이킹>은 화학반응으로 모성을 만들어내겠다는 회사의 상품명이자 모성애에 대한 현실적 관찰을 다룬다. 실험 단계에서 이 주사는 개발자인 남성에게 주입된다. 그 결과는 예상한대로다. 모성에 대한 환상이 아직도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음을 돌아본다. <그녀의 이름을 보았다>는 장기이식과 엄마와 딸 사이에 낀 엄마의 이야기다. 뇌사로 판명되면 딸에게 장기 이식이 가능하다. 무능력한 아버지와의 일화가 주로 나온다. 그럼 엄마는 어디에 있을까? 돈을 벌기 위해 정신없이 일한다. 마지막 문장에서 ‘낯선 이름’이라고 했을 때 ‘왜?’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잠시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엄마는 이름보다 엄마란 호칭이 더 익숙하다.


<바통>의 바통은 우리가 릴레이를 할 때 주고받는 그것이 아니다. 은박지에 포장된 김밥이다. 취업난과 생계 문제가 엮이고, 그 사이에 연인의 배반과 실직이 양념처럼 버무려져 있다. 자신들이 바라는 삶을 살 수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지하철 역사의 풍경 속에서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가족의 발견>은 한 코피노의 아버지 찾기에서 시작해 죽이기로 끝난다. 살인 모의는 코피노 미셸의 생각이 아니다. 이복누나, 아니 이복언니의 생각이다. 이 아버지란 인물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인간인지 보여주는 장면들을 보면서 나의 윤리의식을 잠시 내려놓았다. 마지막 아버지의 한 마디와 사기 경력자의 의도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피도 눈물도 없이>는 예상을 벗어난 장면의 연속이다. 400년 만에 부활한 흡혈귀가 처음 찾아간 곳이 선지국집이라니 기발하다. 하지만 이 선짓국을 즐겨 먹는 흡혈귀의 별명은 선녀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은 사업 실패 등으로 사채를 쓴 알바다. 서빙에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고, 선녀에겐 신선한 피를 일정한 기한 동안 공급한다. 문제는 부쩍 자주 찾아오는 사채업자다. 선녀의 능력이면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주는 상황은 나의 예상을 넘었다. 아주 멋진 블랙코미디다. 이 간결한 단편 속에 세상의 쓴맛을 가득 담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유쾌하게 읽었지만 씁쓸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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