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마와라시
온다 리쿠 지음, 강영혜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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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의 소설을 정말 오랜만에 읽었다. <밤의 피크닉>으로 입문한 후 여러 작품을 읽었지만 취향을 조금 타는 작가다. 한참 책을 사 모을 때 상당한 숫자의 책을 집에 쌓아두었는데 늘 그렇듯이 묵혀만 둔다. 그 책들이 이제 재간되어 나오는 것을 보면 시간에 대한 나의 감각이 흐려진다. 온다 리쿠에 대한 설명 중 하나가 ‘노스탤지어의 마법사’란 것이다. 내가 읽은 소설에서 그렇게 강하게 느끼지 못한 것 같은데 이번 작품은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산타와 그 형 다로가 운영하는 것이 골동품점이지 않은가. 그 중에서도 오래된 건축물의 크지 않은 물건인 문고리, 맹장지, 들창, 난기둥, 문 등의 자잘한 의장이 들어간 것이다. 읽으면서 내가 무심코 보고 지나간 것, 기억 속 장소와 물건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이야기의 문을 여는 부분에서 스키마와라시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작가가 만든 용어다. 틈 사이에 존재하는 아이라는 의미다. 동창회에서 어릴 때 산타와 함께 걷던 여자를 본 동창이 한 말을 듣고 형이 만든 용어다. 산타에겐 여자 형제가 없기에. 그리고 산타란 이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일어식 표기다 보니 한자의 발음은 같지만 다른 의미를 가진다. 여기서 산타는 散多다. 직관적으로 산타클로스를 떠올린 사람이 많겠지만 말이다. 재밌는 부분은 둘째란 의미를 가진 지로란 이름의 개가 있었다는 것이다. 의미가 모호한 주인공의 이름의 기원이 어떻게 된 것인지는 책 마지막에 나오지만 분명한 것은 아니다.


이 소설에서 발음과 의미의 차이를 여러 곳에 녹여내었다. 대표적으로 산타가 있고, 스키마와라시로 부르지만 다른 사람들은 마미라고 부르는 소녀 유령(?)이 있다. 한자 문화권의 특징이라고 해야 하나. 이 마미는 철거 예정인 건물에서 나타난다. 당연히 위험한 공간이다. 여기에 산타에게 초능력을 부여했다. 사이코메트리 능력인데 늘 발현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런 종류도 아니다. 이야기가 진행함에 따라 이 능력이 발현하는 순간은 많은 경우 타일과 관련되어 있다. 오래된 건물에서 떼어내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타일을 만질 때 알 수 없는 환영을 마주한다. 이렇게 적고 보니 대단한 비밀인 것 같지만 긴박한 스릴러와는 거리가 있다.


작가 취향의 집대성이란 안내글이 보인다. 이 소설 속 산타가 보고 맛보고 경험하는 공간 등이 작가의 취향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한다. 여기에 판타지와 미스터리 등을 버무려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상당히 가독성이 좋고, 다루고 있는 이야기가 조금은 느슨한 느낌이라 속도감을 그렇게 강하게 느끼지는 않는다. 그런데 읽다 보니 끝이다. 개인적으로 산타가 경험한 것들이 나의 추억을 불어오고, 주변에서 쉴 새 없이 바뀌는 건물들을 돌아보게 한다. 도시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과정 속에 과거의 모습은 밀려날 수밖에 없다. 작가가 눈 여겨 본 부분이 바로 이 모습이다. 하지만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재 속에서 다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다. 이 기운을 통해 산타가 환상을 보는 것 같다.


늘 그렇듯이 무심코 표지를 보다 소녀의 모습이 눈길을 끌어 자세히 보았다. 소설 속에 묘사된 그 모습이다. 표지의 짙은 푸름이 이 무더운 여름에 나를 잠시 과거의 한 장소로 데리고 간다. 희미한 추억의 한자락이지만 왠지 아련하다. 형이 모은다는 문고리 등을 떠올리면 한때 나의 수집벽이 스쳐 지나가고, 골동품점을 저녁에 식당으로 운영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이젠 사라진 관계들이 떠오른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약간의 어리둥절함도 느끼지만 앞부분에 깐 의혹들이 해결되는 상쾌함도 있다. 화려해지고 거대해진 공간과 문화에 익숙해지면서 오히려 낡고 작은 곳에 대한 아련함이 더 샘솟는 것 같다. 어릴 때 그렇게 큰 것 같았던 곳이 어른이 되어 보면 생각보다 너무 작은 것에 놀랐지 않은가. 어떤 대목에서는 일본 애니를 한 편 본 것 같은 느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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