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시선 - 개정판
이승우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09년에 나온 소설의 개정판이다. 사실 인터넷서점에서 검색하기 전에 이 소설이 개정판이란 사실을 몰랐다. 작가의 신작이라고 생각했다. 구판 표지를 보니 왠지 낮이 익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만약 좋아했다면 그의 소설들을 더 읽었을 것이고, 더 열심히 모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로쟈가 한국 남성작가에 대한 글을 쓸 때 그를 포함하면서 부쩍 관심이 늘었다. 그냥 무심코 헌책방에서 싼 가격 덕분에 산 <생의 이면> 구판에 자주 눈길을 준 것도 이런 이유다. 뭐 그렇다고 읽을 정도의 열정도 시간도 현재 나에겐 없다. 산 후 바로 읽지 않은 책들의 가능성은 언제나처럼 늘 희미하다.


작가 이승우에 대한 평가가 한국보다 프랑스에서 더 좋다는 것과 그의 대표작에서부터 아버지에 대한 관념에 천착했다는 것 정도가 아는 전부다. 그런데 목록을 펼쳐 놓고 보니 읽은 책이 한두 권 보인다. 사놓고 묵혀둔 책도 당연히 눈에 들어온다. 외국 작가의 책을 읽다 펼쳐든 그의 문장은 나의 예상과 달리 가독성이 아주 좋았다. 분량이 많지 않다 보니 생각보다 더 빨리 읽었다. 개정판이란 정보 때문에 소설 속에 나온 몇 가지를 인터넷에서 검색하고 확인한다. 혹시 개정판에서 바뀐 것이 아닌가 하고. 하지만 이 둘을 천천히 비교할 능력도 마음도 없다 보니 건성으로 확인한다. 나의 기억이 잘못된 것으로.


말테와 로맹 가리의 글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한 권을 내가 읽었고, 한 권은 읽지 않은 작품이다. 로맹 가리의 소설에 대한 한승원의 지적을 보면서 왠지 크게 공감을 못한 것은 나에게 그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자가 결핵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요양지를 바꾸게 된 이유를 보면서 그에 대한 평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화자는 편모 밑에서 자랐지만 아버지의 부재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았었다. 그가 요양을 온 곳에서 한 노교수의 질문을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꿈까지 이어지면서 그는 생부를 찾으려고 한다. 아빠 역할까지 완벽하게 한 엄마에게 물을 수 없어 외삼촌에게 묻는다. 그를 만나러 간다. 삼팔선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로.


소설은 대부분 중요한 인물들을 이름이 아닌 익명으로 처리한다. 자신의 애인도 P라고 부르고, 생부인 듯한 사람도 약력으로 표시하지 이름은 말하지 않는다. 그가 지역 선거에 출마했지만 기호로 표기한다. 그가 머문 여인숙 주인이 누굴 만나러 왔냐고 물을 때도 그 이름을 말하지 못한다. 그의 얼굴에서 자신의 미래 모습을 그려본다. 적극적으로 만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군사경계선에 가깝다 보니 사람들이 의심의 시선으로 쳐다본다. 의지가 분명하다면 바로 만날 수도 있을 텐데 그는 주저한다. 이 주저가 한순간 폭발하는데 그때 엄마의 이름이 나온다. 아버지의 역할까지 아주 잘 한 엄마의 이름이 말이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감정이 격해지고,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는 욕망이 꿈틀거린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흔히 잊고 있던 아들이 찾아오면 반갑게 맞아줄 것이란 상상을 한다. 물론 처음에는 의심과 어리둥절함이 같이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 속 상황은 그것과 다르다. 생물학적 아버지란 피할 수 없는 사실도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근원적인 의문이 아버지 부재의 인식과 만나 일어나는 상황은 다양한 상황에서 여러 가지로 대입이 가능하다. 혈연을 확인하는 것보다 현재 아버지에게 중요한 것은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이 우선이다. 현재의 안정이 더 중요하다. 이런 현실에서 화자가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당연한 것이었던 존재가 누군가에는 부재였다는 사실과 나의 존재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시간 내어 집에 있는 책들 한 권씩 찾아 읽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