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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떠난 뒤 맑음 - 하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7월
평점 :
상권보다 분량이 많다. 하지만 익숙해진 이야기 전개와 문장 덕분인지 진도가 잘 나갔다. 상권 마지막에서 이츠카의 부모가 신용카드 사용을 중지했다. 부모의 바람은 신용카드 사용을 중지했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와라는 의도였지만 이 두 소녀는 아직 돌아갈 마음이 없다. 미국을 보는 여행을 더 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때 그녀들이 보여준 선의가 새로운 인연으로 이어지면서 조금 더 여행이 가능해진다. 지속 가능한 여행에 가장 필요한 자금을 이츠카의 알바로 모으는 것이다. 숙소 문제는 그들의 선의로 만난 헤일리의 방에서 거주하면서 해결한다. 한동안 이들은 헤일리의 거주지인 내슈빌에 머문다. 이 시기의 그들을 보면 여행의 분위기가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내슈빌의 바에 취직한 이츠카는 자신이 취업 비자 없음을 알린다. 그 사실을 알지만 주인은 이츠카가 속여 몰랐다는 뻔한 거짓말을 사전에 맞춘다. 알바를 두 곳에서 하면서 다음 여행을 위한 경비를 모은다. 아빠의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와 자신이 직접 돈을 벌 때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신용카드를 끍을 때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던 것이 자신이 벌어서 충당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비용 지출에 좀 더 신경을 쓴다. 낮에 일하는 곳에서 남자가 데이트를 신청해도 영화 관람료가 아까울 정도다. 이 장면들을 보면서 그녀가 세상의 쓴맛을 잠깐 맛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녀의 성장도 같이 이루어진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부담스러운 이츠카와 달리 레이나는 천진난만하고 사람들과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간다. 이 둘의 여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한 방식은 이츠카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상권에서 이들이 여행하는 것을 보고 걱정했는데 이 걱정이 약간이나마 문제가 되는 순간이 한 번 일어난다. 변태라고 해야 하나. 레이나의 친화성은 여행이 길어지고 비용 문제가 생길 때 작은 돌파구가 된다. 가끔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내슈빌에서 일본만화동호회 사람들과의 만남을 보면서 왠지 모를 공감을 한 것은 왜일까?
이들이 다음 여행을 위해 돈을 모을 때 한 달 이상 부모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다. 이 상황을 보고 나라면 어떤 반응을 할까 생각했다. 아마 엄청나게 걱정했을 것이다. 어쩌면 찾으러 갔을 지도 모르겠다. 이 긴 연락두절을 두고 부모들의 생각과 행동이 갈린다. 걱정하면서 기다리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실종을 알리고 제보를 기다리는 부모로. 레이나의 아빠인 우루우는 후자다. 어쩌면 대부분의 부모는 우루우처럼 하지 않을까?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아이가 더 멀리, 더 많을 것을 보고 경험하고 오기를 바랄까? 물론 이런 마음도 존재할 것이다. 이 판단은 아마 아이와 함께 살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어려운 선택이다.
중간 중간 우여곡절이 있지만 소녀들의 여행은 계속 된다.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면서 겨울의 느낌이 달라진다. 여행하는 도중에 만난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여행을 응원하고 도와준다. 그들이 큰 탈 없이 긴 여행을 할 수 있게 된 데는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릴러의 장면들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 현실일 것이다. 이 소설에서 이츠카가 크리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상당히 흥미롭다. 작가는 후반부에 한 문장으로 이 특별한 관계를 설명한다. 예상하지 못한 미래의 모습이라 놀란다. 그리고 아이들의 가출이자 긴 여행은 부부가 가진 생각의 틈새를 들여다보게 한다. 사랑과 신뢰를 놓고 고민하는 리오나의 모습은 의미심장하다. 천진하고 무모하고 용감한 소녀들의 여행이 코로나 19로 잠시 사라진 여행 세포를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