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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카르테 4 - 의사의 길 ㅣ 아르테 오리지널 9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김수지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4월
평점 :
<신의 카르테> 시리즈 최근작이다. 이 시리즈를 자주 보았고, 집 어딘가에 시리즈 다른 권이 한두 권 정도 있을 테지만 아직 읽은 기억은 없다. 아마 시간이 된다면 역주행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즘 이렇게 역주행하고 싶은 시리즈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 언제 읽으려나! 내가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 작가의 소설은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한 편이다.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이번 소설을 선택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가슴이 따스해지는 소설이 최근에 다시 눈길을 끄는데 이 작품도 그렇다. 그 따스함은 현실에 바탕을 두고 펼쳐지기에 더 긴 여운과 감동을 준다. 뛰어난 가독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시리즈 전작을 읽지 않아 구리 짱이 어떤 활약을 했는지 모른다. 전작에서는 24시간 365일 불이 꺼지지 않는 혼조병원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대학병원에 들어와 그는 대학원생이 된다. 거의 월급은 19만 엔이다. 의사라는 직업을 생각하면 박봉이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대학원생 의사에게는 이런 월급도 주지 않았던 적이 있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시절이었다.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은 구리하라 이치토는 이 월급으로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래서 비번이면 아르바이트를 한다. 학위를 따야 하니 실험도 해야 한다. 이 소설의 상당히 많은 부분이 실험실에서 일어나는데 개인적으로 병리의 후타바가 시간나면 읽는 sf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로 보였기 때문이다.
구리 짱의 취미는 나쓰메 소세키의 <풀베개>를 계속해서 읽는 것이다. 이 소설의 재미난 대목 중 하나는 이런 소설 속 문장을 인용해서 들려주는 것이다. 한 작가의 작품만 나오지 않고 상당히 다양한 작가의 문장이 인용되는데 재밌다. 책과 더불어 자주 나오는 것이 술을 마시고, 일본 사케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이 애정은 읽다 보면 술을 잘 못 마시는 내가 한 잔 맛을 보고 싶을 정도다. 좋은 쌀로 빚은 맛 있는 술 이야기는 언제나 나의 입맛을 다시게 한다. 물론 어떤 대목에서는 의국에서 술 마시는 장면이 나와 음주 의사의 진찰 같은 상황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걱정할 정도의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하얀거탑이라고 불리는 대학병원 의사들과 환자에 대한 이야기다. 드라마 <하얀거탑>과 같은 자극적이고 권력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보다 뜨겁거나 냉정한 열정을 가슴에 품은 의사들 이야기다. 그들이 매일 진찰하고 치료하는 환자들 이야기다. 판타지 소설처럼 이 의사들은 모든 환자를 치료하지 못한다. 조직 간의 갈등도 존재하고, 쌓이고 쌓인 관료적 행동들도 곳곳에서 드러난다. 차를 잘 우려내어 마셔 리큐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의사는 너무 열정적이고 바른 의사라 좌충우돌하는데 왠지 모르게 이전 작품에서 구리 짱이 그런 의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환자를 끌어당기는 구리하라라는 별명은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데 이 소설 속의 상황을 보면 좋은 쪽이 아닐까 생각한다.
현직 의사가 쓴 소설이라 전문적인 단어들이 많이 나온다. 의학 소설이나 드라마 등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인데 몰라도 읽는데 문제없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환자는 29살의 4기 췌장암 환자인 후타쓰기 씨다. 그녀의 질환은 쉽게 고칠 수 없는데 그녀가 구리 짱을 지명하면서 인연을 맺는다. 하지만 그 인연은 생각보다 오래 전에 있었고, 그때의 감정이, 경험이 구리 짱으로 이어졌다. 작가는 이런 환자들의 사정을 자극적으로 그려내지 않고, 상당히 담담하게 보여준다. 물론 서로의 감정과 이해가 충돌하는 상황도 생긴다. 그렇지만 냉정한 열정과 환자에 대한 애정이 많은 구리하라는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그 문제를 돌파한다. 순간 통쾌한 장면이지만 뒤에 드러나는 현실은 또 다른 문제를 담고 있다.
“본디 의료라는 것은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좌우한다는 터무니없는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문장은 대학병원의 일그러진 구조물 이야기로 넘어간다. 빵집 교수가 병상 확보를 위해 환자들의 퇴원을 독촉하는가 하면, 어떤 환자는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겠다고 하는데 다른 조직들이 자신들의 가이드라인을 이유로 막는다. 병원과 의사 존재 이유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라는 기본을 어느 순간 잊는데 우리는 현실에서 자주 만난다. 지방 대학병원이 더 많은 의사들의 자신들의 의국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은 인원이 곧 힘이라는 논리와 함께 변하는 전공과 선호도와 연결되면서 생각이 복잡해진다. 인턴들이 전공을 자신들의 과로 오길 바라는 그 욕심이 그렇게 나쁘게만 다가오지 않는 것도 이 소설의 매력이다. 그리고 열악한 지방 병원 환경 부분은 작년도 공공의대 논쟁과 엮이면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공한다.
의사는 죽음을 늘 가까이하고 있다. “죽음은, 스쳐가는 경치에 지나지 않는다.”란 문장은 그 죽음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 없다는 사명감이자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환자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이 문장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리고 박봉의 의사 아내가 보여주는 너무나도 현명하고 따뜻한 모습은 왠지 모르게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더불어 재미난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여러 장면들은 조금은 무거울 수도 있는 장면들을 작은 웃음으로 넘어가게 한다. 오니키리 호조 선생이나 다른 의사들이 구리 짱이 친 사고를 무마하고 막아주는 장면을 보면서 좋은 의사란 한 사람만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는다. 구리 짱이 복마전 같은 대학병원의 뛰어난 점과 문제점들을 조금씩 보여주는 장면은 내가 대학병원에 가지고 있던 몇 가지 시선을 살짝 바꿔주었다. 구리 짱의 냉정한 열정을 다른 소설에서 다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