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노동조합
김강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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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전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선택했다. 지난 책의 경우 몇 번의 주저를 거친 후 읽었다면 이번에는 약간의 주저함만이 있었다. 이 주저는 저질 기억력과 밀린 책들 때문이다. 이 책을 선택하기 전 이전 단편집에 대한 나의 글을 간단히 훑어본 후 그 주저는 사라졌다. 그리고 첫 단편을 읽으면서 이 선택은 올바른 선택임을 알 수 있었다. 책 두께에 비해 단편의 숫자가 좀 많은 느낌이 있지만 현실을 바탕으로 이 현실을 비틀고 꼬고 풍자한 이야기들이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잠시 지난 시절의 추억 속으로 빠진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월요일은 힘들다>란 제목만 보면 직장인의 월요병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 소설 속 무대는 무인도다. 요일도 자신이 직접 정했다. 섬 밖의 현실 속 요일과 같지 않을 것이다. 그럼 왜 힘들까? 그가 섬에서 생존을 위해 하는 일들을 보면 이해가 된다. 실제 이 소설의 재미난 지점은 이런 설정과 황당한 가능성을 걱정하는 장면들이다. 표제작 <소비노동조합>은 기본소득이 전국민에 적용된 이후 사채업자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기발한 사고 실험이다. 소득과 소비의 관계를 단순하게 설명하면서 놓친 부분도 많지만 기본소득 인상을 위해 소비노동조합 조직을 만들려고 했다는 것은 사회 구조에 대한 통찰이 있었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언론에서 부정수급, 도덕적 해이 등을 말하면서 반대한 그들의 불로소득과 도덕적 해이 등을 눈감는 현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와룡빌딩>은 통일 이후의 한국 현실을 다루었다. 그 중에서도 조물주 위에 있다는 건물주 이야기다. 안정적인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자영업으로 몰릴 수밖에 없고, 이것은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상승도 그것을 바쳐줄 사람과 시장이 있을 때 가능하다. 가까운 미래의 서울 부동산은 어떻게 될까? 읽으면서 많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옛날 옛적에>는 대학 교수 임용에 떨어진 여제자의 미투를 배경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구성이다. 자신보다 늘 한 발 앞선 동기의 삶이 이 미투로 흔들릴 때 그처럼 멋진 삶을 살지 못한 그의 조금 찌질한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도 대학 교수란 점이다. 찌질해 보이는 삶을 살았다고 해도 성공적인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일어나>는 땀을 많이 흘렸던 한 중년 남성의 이야기다. 나이가 들면서 그는 땀을 흘리지 않는다. 아내와 첫 밤을 보낼 때 그 땀을 열정과 사랑으로 포장해 주변 아줌마들의 은밀한 눈총을 받았는데 이제는 그 땀이 사라졌다. 학창 시절 그는 선배들과 함께 삼땀으로 불렸는데 그 선배 중 한 명을 목욕탕에서 만났다. 발톱을 깎다 피를 흘리는데 땀도 흘렀다. 자신이 아파야 땀이 나온다고 한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그곳에서 만난 노인의 한물간 경험담이 듣는데 갑자기 그 땀의 실체가 다가왔다. 삶과 세월 속에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게 된 우리의 모습이 보였다. <득수>는 사타구니 건선 때문에 긁다가 성추행범으로 몰린다. 가방에 친구가 준 동영상 CD 등이 결정적 증거로 작용했다. 재판 전 구치소에서 그가 경험한 이야기가 아주 현실적 은유로 가득하고, 운 좋게 건선으로 고생한 판사의 경험 덕분에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얻는다. 득수와 친구의 삶 속에서 나의 과거 한 장면을 마주했다.


<사자들>은 동네 책방에서 일어난 작은 사건을 연극적으로 풀어내었다. 이름이 아닌 옷차림으로 구분하고, 그들의 행동을 관찰한 사람들의 시선과 실제 행동 사이의 간극을 재치 있게 다루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가 씁쓸하다. <그날 비가 왔다>는 폭력의 대물림을 다룬다. 가정 경제가 무너진 후 가족을 돌봐야 하는 존재가 아닌 폭행의 대상으로 몰고 간 아버지와 그 폭력을 엄마 이후 대신 겪어야 했던 소년, 그리고 그 소년의 폭행 대상이 되었던 개의 삶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너무 단순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일용노동자에게 비가 의미하는 바를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도르다>는 한 편의 우화다. 읽으면서 많은 가능성을 떠올렸는데 마지막 몇 문장이 다른 우화를 연상시켰다. 어쩌면 내가 읽으면서 작가가 어렵게 이름 붙은 것들에 혹해 이야기 밑에 깔린 것들을 놓쳤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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