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국가 대한민국 - 부족주의의 노예가 된 정치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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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글을 좋아한다. 오랫동안 읽어왔다. 그가 보여준 새로운 시각은 나를 일깨워주는 경우가 많아 특히 더 좋아한다. 작년에 읽었던 책도 내 속에 가득한 편협함을 많이 깨트려주었고, 이번 책도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읽다 보면 그가 말하는 주장들에 반감을 가지는 부분이 점점 더 늘어난다. 내가 알고 있는 부분과 달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의 주장들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다가 온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의 이상적인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태클을 걸고 싶지는 않다. 이런 주장도 있어야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첫 문장으로 “나는 ‘진보’니 ‘보수’니 하는 구분에 대해 냉소적이다.”라고 적었다. 자신도 진보 진영에 기울어져 있다고 생각할 테지만 이 진영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비판적 입장을 유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이 진영 없음이 가져다주는 한계가 점점 눈에 들어온다. 정론과 긴 세월을 본다면 그의 말이 맞겠지만 현실 정치에서 우선 순위를 정하고 협상해야 하는 부분과 또 그런 인물들만 국회로 진출시키는 민중이란 허상에 너무 많은 기대를 담고 있어 씁쓸함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다른 방송이나 책에서 얻은 정보의 한계란 점이 있지만 이 글 또한 그 답답함을 날려줄 정도의 대안이나 힘이 있지는 못하다. 강준만의 글을 보면서 늘 느끼는 아쉬움 중 하나다.


<나꼼수>의 열렬한 애청자였다. 이후 딴지에서 나온 팟캐스트들을 재밌게 들었다. 정치 관련 팟캐스트보다는 문화, 예술 쪽이 대부분이었지만 <나꼼수>의 강렬함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정봉주 사건이 터졌을 때 그의 말을 더 신뢰했다. 이런 신뢰는 박원순 사건이 터졌을 때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의심들은 하나씩 사라졌다. 어쩌면 아직 마음속으로 판결까지 기다려보자는 마음이 있을지 모른다. 정의당 대표의 성추행 문제가 생겼을 때는 진보 진영의 멍청함을 탓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막아버린 그들이 원망스러웠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길을 그들이 눈앞에서 하나씩 닫는 느낌이었다. 이 책에서 김어준과 박원순에 대해 그가 쓴 글 모두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우주 최강 미남 문재인’이란 글을 보고 쉽게 문빠를 떠올렸다. 그런데 이 글을 적고 팻말을 든 인물이 공무원이라고 한다. 아산 반찬가게 주인을 괴롭힌 이유는 더 황당하다. 문재인 정권의 컨트롤 타워가 되었다는 주장에는 반대하지만 이 문빠들이 벌인 문제들이 지금은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한 말 때문에 그들이 더 강하게 밀집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성을 찾아야 한다. 집단의 소속감은 쉽게 넘어갈 수 없다. 나의 정치관이나 윤리관이 집단 속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아무리 간 큰 직원이라고 사장이나 상사의 정치관에 정면으로 부딪혀 싸우기는 힘들다. 사소한 비리는 또 얼마나 많은가. 한때 이런 비리들을 견딜 수 없었는데 나 자신이 흙탕물 속에 잠기다 보니, 현실을 더 알다 보니 무기력해진 부분이 있다. 변화와 진보가 나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알지만 실천으로 옮기기는 너무 힘들다. 중늙은이의 구차한 변명이다.


부족주의. 학연과 지연을 통한 인맥 쌓기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인맥이 형성되는 이유는 서로의 이익이 맞기 때문이다. 동창회, 동문회 등의 모임은 이런 이익의 교환장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나가면 쉽게 낭패를 본다. 저자가 “부족의, 부족의 의한, 부족을 위한 진보”란 소제목을 낸 것도 이해가 된다. 새롭게 법이 만들어지고, 통과하는 과정 속에 얼마나 많은 로비가 들어가고,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는지 셀 수 없이 많이 봐왔다. 인간들의 욕망은 진보니 보수니 상관없이 자기 이익이 우선이다. 집값 문제만 해도 너무 높다고 말하지만 자신의 집이 더 올라가길 바라고, 한 채 더 사는 경우도 봤다.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인 이유 중 하나가 금리인데 이번에도 기준 금리가 동결되었다. 민주당 의원이 종부세 기준 금액을 올리겠다는 법안을 발의한다고 하는데 황당하다. 신도시 문제에 대한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검찰 개역에 대해 김웅의 <검사 내전>을 인용해 말하는데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기소 독점권을 가진 검찰이 어떤 행동을 해왔는지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검찰 조직이 점점 비대해지고, 점점 정치권에 줄을 대고 있는 현실을 볼 때 개혁은 이루어져야 한다. ‘검찰 공중분해’란 표현을 쓰면서 ‘그간 잘 해온 기존 수사 역량을 해체’한다고 했는데 과연 그랬는지 묻고 싶다. 김웅이 자신의 책에서 검사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보여주었는데 현장에도 나가지 않는 검사들이 무슨 수사를 한다는 말인가. 일이 너무 많아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지만 이 일의 일부를 경찰에 넘기고 서로 견제하게 만든다면 더 좋은 수사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면 ‘기소하지 않을 권리’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일이 많이 줄어 들 것이다.


윤석열에 사람들이 분노한 것은 그의 수사가 너무 저열하고 뚜렷한 목적을 가진 채 비인권적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다른 정치인들에 대해, 아니 삼성이나 이재용에 대해 그 반만큼이나 했는지 묻고 싶다. 교수 기득권층이 저지르고 있던 불합리한 관행에 대한 질타가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은 부분은 놀랍고 지금은 조용히 묻혔다. 금태섭에 대한 옹호는 다른 정치인의 형태와 어떻게 다른지 묻고 싶다. 내 눈에는 그 놈이 그 놈인데. 너무 편협된 시각일까? 기레기 부분도 단순히 진영 논리로 말할 부분이 아니다. 물론 이런 점이 전혀 없지 않다. 아니 많을 것이다. 하지만 기자들이, 데스크가 자신들의 진영 논리나 이익을 위해 글을 쓰는 부분을 뭐라고 할 것인가? 사실을 적었다면 반박이라고 할 텐데. 그리고 현실에서 많은 언론사들이 어뷰징 하고 있고,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는데 이들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훌륭한 기자가 많다고 할 수 있지만 그들이 이런 기사들에 가려진 현실을 생각하면 이 단어를 쉽게 내려놓을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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