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날 정해연의 날 3부작
정해연 지음 / 시공사 / 202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묵직하고 먹먹한 소설이다. 낯익은 이름에 비해 정해연의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좋아하는 스타일의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밝은 느낌의 소설을 더 재밌게 읽었는데 이번에는 무거운 이야기다. 구원이란 단어를 보면서 처음에는 가벼운 이야기를 떠올렸는데 좀더 깊이 생각하면 이 단어가 얼마나 무거운 상황에서 비롯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부모가 아이를 잃는다는 것은 그의 삶과 세계가 파괴되는 것이다. 이 소설은 실종된 지 3년이 지난 후 강에서 발견된 아이의 유골에서 시작한다. 이 유골을 발견하는 때는 남자가 프로포즈를 하려는 순간이다.


선준에게 경찰이 전화를 한다. 발견된 유골에 걸려 있던 목걸이 때문이다. 아내 예원이 만든 유일한 물건이기에 이 유골이 자신들의 아이인 선우일 수 있다. 유전자 검사를 해야 정확한 답을 알 수 있다. 미친 듯이 선우를 찾는 예원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그 순간 예원은 이 실종 사건 담당 형사의 차를 들이박는다. 어느 순간 흐지부지된 수사에 화가 났다. 경찰서에서 악다구니를 써는 그녀를 보면서 완전히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형사의 입장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를 알게 된 것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읽고 난 후다. 양 형사의 한 마디가 정말 가슴을 아리게 한다.


보안회사 직원인 선준은 예원을 데리고 경찰서에 나온다. 그리고 정신 병원에 입원시킨다. 지난 3년 동안 이 부부는 미친 듯이 선우를 찾아다녔다. 정신 병원에서도 그녀가 붙인 전단지를 뗀 환자 한 명을 때려 진정제 주사를 맞았다. 어느 순간 그녀의 집착은 광기처럼 보였다. 이 둘 사이를 보면 일상이란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안다. 나중에 일상을 행복이라고 표현한 것도 이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이 일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병원의 한 아이가 부른 노래에서 시작한다. 선우가 부르던 개사곡이다. 이 아이가 자폐증상이 있는 로운이다. 로운의 엄마는 열여섯에 아이를 낳았다. 며칠 전에 읽었던 소설 <보통의 노을>과 완전히 다른 전개다. 예원은 로운을 데리고 병원에서 탈출한다. 문제가 커진다. 유괴다.


로운이 부른 노래와 선우를 안다는 사실만으로도 희망을 가지기 충분하다. 로운의 엄마를 찾아가지만 그녀는 입금을 요청하는 통장번호만 전달한다. 5천만 원이란 거액이다. 이미 가정경제가 박살난 이들에게 너무 큰 돈이다.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예원은 아파트 밖으로 몸을 던진다. 다행히 낮은 층수와 다른 변수로 크게 다치지 않는다. 읽는 내내 이 모습을 보고 답답했다. 작은 희망의 불씨에 모든 것을 걸기에는 유골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아직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병원장에게 경찰 신고를 유예해달라고 요청한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로운과 함께 아이를 찾으러 간다. 쉽지 않은 길이다. 경찰에 신고하면 바로 유괴범으로 잡힐 수 있다. 하지만 가지 않을 수 없다.


읽으면서 두 가지 가정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양 형사에게 로운이 엄마 주희에게 받은 통장 주인을 확인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선우의 실종 이후 공중전화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다. 하지만 이 가정보다 왜 이들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형사는 격무에 시달리고 누군가의 통장번호를 열람하는 것은 개인정보법 위반이다. 또 얼마나 많은 사기들을 마주해야 했던가. 말없는 전화도 마찬가지다. 두려움과 공포가 말문을 막았다. 이 모든 것은 모두 결과론이다. 이 이전으로 돌아가면 왜 불꽃놀이를 갔을까? 남편의 사고가 업었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하는 원망과 아쉬움이 계속 터져나온다. 불안하고 불편하다.


선준이 울면서 예원에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낼 때 이 부부는 다시 하나가 된다. 예원이 미친듯이 선우를 찾아다닐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선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준은 자신이 선우 찾는 것을 포기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두려워한다. 로운이 엄마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해를 하고, 이런 아들을 돌보는 것이 버거워 주희는 아이를 기도원과 병원에 맡겼다. 선우의 실종도 육아의 어려움에서 비롯한 작은 실수 탓이다. 잠시 놓은 손이 실종으로 이어졌다. 작가가 손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 것도 바로 진심과 용기가 있다면 다시 잡을 수 있다고 한 말 덕분이다.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부모들의 액션이나 어렵고 힘든 과정을 다룬 스릴러를 기대한 사람에게는 아쉬울지 모르지만 상실과 용서와 일상의 행복을 돌아볼 사람에겐 짧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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