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노을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82
이희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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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로 강한 인상을 남긴 작가의 신작이다. 손원평이 두 권의 소설로 나를 사로잡은 것처럼 이 작가도 이 작품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최근에 나를 사로잡은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은 간결하고 명확하고 읽기 편한 문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내용까지 가벼운 것은 아니다. 잘 읽히지만 읽고 난 다음에 곱씹을 내용들이 아주 많다. 왠지 모르게 처음 몇 쪽을 읽었을 때 박현욱의 <동정 없는 세상>이 떠올랐다. 희미한 기억으로 이 두 작품을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문득 이 소설이 떠올랐다. 희미한 기억을 더듬으면 두 주인공의 키 차이가 상당한데. 그나저나 박현욱 작가의 신작은 언제 나오려나?


34살의 엄마, 18살의 아들. 나이 차이는 16살.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자 사이가 아니다. 16살에 임신한 최지혜 씨는 아빠 없이 아이를 낳고 힘들게 아이를 키웠다. 이제 아들 최노을은 엄마가 애를 낳은 나이를 넘었다. 이 소설은 이 두 사람이 옷가게에서 고가의 패딩을 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보통(?)의 엄마들이 들었다면 좋아했을 누나란 표현을 그녀는 아들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리고 이 모자의 삶이 하나씩 흘러나온다. 왜 지방 도시로 이사 왔는지, 그녀가 어떤 일을 하는지, 노을이 알바를 하는 중국집 짜장짬뽕집 이야기 등이 말이다.  


노을에게는 이 도시에 이사 왔을 때부터 친해진 친구가 있다. 중국집 딸 성하다. 처음에는 남자인가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 소설에서 자주 나오는 선입견에 대한 것 중 하나가 남녀 사이에 친구가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노을은 성하와 절대 연인 관계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너무 허물없는 사이라 주변에서 오해도 많이 한다. 성하에게 남자 친구가 생기려는 순간 무심코 한 행동 하나가 관계의 발전을 망쳤다. 성하가 노을에게 하는 말이나 행동은 쉽게 납득할 만한 내용이 아니지만 이 둘은 최고의 친구다. 이런 둘 사이에 새로운 친구가 한 명 끼어든다. 반 친구에게 매를 맞고 있던 동우다. 공부 잘 하고, 얼굴 하얗고, 어딘가 공허한 눈빛을 가진 그는 노을에서 성하를 소개해 달라고 말한다. 기존의 드라마라면 이때부터 성하에 대한 애정이 샘솟겠지만 이 소설은 그런 전개가 아니다.


이 소설에서 노을이 계속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엄마의 나이 어림과 동안의 얼굴이다. 둘 사이를 착각한 수많은 이야기와 더불어 엄마에게 관심을 보였던 남자들 이야기가 나온다. 심지어 열 살이나 어린 남자까지 있었다. 엄마가 여자로써 누군가를 만나길 바라지만 진짜 누군가가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가 관심을 가지자 불안해한다. 그 인물이 바로 성하의 오빠 성빈이기 때문에 더 불안하다. 무려 5년 동안 그녀를 진심으로 다가간 인물이다. 여섯 살 연하란 사실은 소설 속에 나오는 것처럼 남자 연상인 경우를 생각하면 별 문제가 아니다. 다만 어릴 때 아이를 낳은 애엄마란 사실이 문제다. 아니 정확하게는 사람들의 시선과 그 시선에서 비롯한 상처를 엄마가 받게 되는 미래를 걱정한다.


일상 속에서 작은 파란이 일어나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다시 묻게 된다. 이 소설에서는 ‘보통’이 그렇다. 보통의 가족, 보통의 사랑 등이 대표적이다. 보통이란 단어 대신 일반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여기서 다시 평균이란 단어가 대체하는 경우가 있다. 이 모든 단어를 우린 무심코 사용하는데 이 기준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난 사람들에게 우린 엄격한 잣대를 가져다 댄다. 엄마 지혜와 성빈의 사랑이 가져올 미래의 일들이 대표적이다. 가족들보다 제3자들이 더 무서운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보통을 작가는 중국집 배달에서 또 한 번 이용한다. 이 중국집은 배달을 하지 않는데 고객들은 배달하지 않는 중국집이라고 욕한다. 뒤틀리고 왜곡된 이미지가 그들의 말 속에 나온다. 그리고 왜 배달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려줄 때 울컥했다. 쥐고 있으려고만 할 때는 결코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 것들을 말한다.


노을이 처한 상황만 보면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그는 밝다. 하지만 그는 남에게 호의를 받는 것을 싫어한다. 타인들의 다른 시선이 왜곡되는 것을 많이 보았기에 사전에 조심한다. 이것이 엄마의 연애와도 연결된다. 동우가 사랑은 특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 사랑을 지켜보고 지켜주는 것도 쉽지 않다. 우린 많은 경우에서 자신과 다른 삶의 길을 가는 사람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한다. 자신의 잣대로 재고, 자신의 무리 속으로 들어오라고 외친다. 이 소설은 그런 점에서 보통(?)적이지 않은 노을을 통해 여전히 보통을 찾고 묻는다. 어느 순간 내가 내뱉는 말들에 다른 무게감을 느낀다. 짧은 소설이지만 다양한 인물의 삶을 함축적으로 잘 풀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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