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 번째 눈과의 짧은 조우
브루스 보스턴 지음, 유정훈 옮김 / 필요한책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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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을 읽기 전에는 SF시라는 장르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SF적인 상상력을 차용해 쓴 시들을 읽은 적은 있지만 시집 전체가 SF시인 경우는 없었다. 출판사 소개에 의하면 브루스 보스턴은 미국 SF시문학계의 대표적인 작가라고 한다. 작가 자신은 과학소설보다 사변소설에 더 가까운 작품을 쓴다고 말하는데 이 시집을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최근 SF를 Science Fiction과 Speculative Fiction으로 분류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사변소설에 대한 간단한 정의를 보면 ‘미래의 인간상이나 사회상에 대한 사색을 중심으로 하는 소설’로 되어 있다. 좀더 익숙해질 필요가 있는 단어다.


1975년 이후 2016년까지 발표한 시들 중에서 시인이 직접 선별해 수록한 선집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기존 과학소설의 범주를 벗어난 작품들이 많이 보인다.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발표된 시들인데 스페이스 오페라, 초현실주의, 뉴웨이브, 사이버펑크, 디스토피아, 포스트 아포칼립스, 하드보일드, 호러, 판타지까지 다양한 장르를 다룬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들인데 읽다 보면 쉽게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는 작품들도 있다. 기존 시들과 다른 느낌을 주는데 낯설지만 신선한 경험이었다. 시집 전체가 이런 경우는 다시 말해 처음이기 때문이다. 소설이 있다면 당연히 시도 있을 수 있는데 말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어쩌면 연속성을 지닌 시집으로 생각하고 달려들었다. 그런데 연작시가 아니었고, 다양한 장르를 다루면서 나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연금술사, 광전사, 살아있는 시체들, 늑대인간, 변신인간, 천사, 악마의 아내, 유령 아내 등의 이야기는 판타지의 영역이다. 읽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소설들 이미지를 잠시 빌려왔다. 뱀파이어와 로봇을 결합한 <로보뱀파이어>는 ‘진부한 이미지’를 가졌지만 자신을 만든 이를 첫 희생자로 삼았다는 대목을 읽고 감탄한다. <우주인의 나침반>을 읽으면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동서남북의 방향이 우주에서 소용이 없음을 알게 된다. “우주는 방향이 없고/ 동시에 모든 방향을 쥐고 있으며”라는 시어는 나의 시야를 순간 넓혀준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다룬 시들에서 과거 핵전쟁의 위험과 지구온난화 문제 등을 마주한다. “볼 것이니, 깨진 바닥에 / 금이 가 곧 황무지가 되어 / 사라진 고속도로,” (<고스트 피플>) 우리 문명은 시간의 흐름 속에 사라지고 새로운 종이 이 곳에 정착할 것이다. 전설 속 사라진 문명인 아틀란티스에서 환상을 제거한 <아틀란티스의 빈민가>는 “아틀란티스 빈민가의 / 길거리에 늘어선 /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집들 안에서 / 살아가고 죽는 이들은 / 여느 착취당한 종족과 / 다르지 않다 “고 말한다. 그리스의 민주주의 뒤에 노예제도가 있었음을 우리가 자주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단순히 SF적인 재미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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