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더브레 저택의 유령
루스 웨어 지음, 이미정 옮김 / 하빌리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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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부끄러운 이야기부터 하나 하자. 나는 이 소설의 작가를 다른 작가로 이번에도 착각했다. 내가 착각한 작가는 ‘루스 랜들’이었다. 얼마 전 루스 웨어의 소설 한 권을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작은 변명을 한다면 이 기억이 두 이름을 혼란스럽게 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름에 대한 저질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 않은가. 소설 등을 읽을 때 가장 곤혹스러운 부분 중 하나도 비슷한(최소한 나에게는 비슷하게 보이는) 이름이 나오면 한참 헤맨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펼쳐 읽자 마자 ‘루스 랜들’이 최근작인가 하는 착각을 했다. 이야기의 시작이 2017년이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 작가 이력을 빠르게 확인하니 다른 작가였다. 하지만 루스 웨어의 소설도 재밌게 읽었으니 반가운 일이다.


현재 한국에 출간된 루스 웨어의 소설은 모두 세 권이다. 이 책은 다섯 번째 소설이라고 한다. 이 책을 포함하면 두 권을 읽었다. 귀차니즘 때문에 한 권은 아직 서평을 완성해 올리지 않았다. 최근 읽고 서평을 쓰지 않는 책들이 늘어나고 있다. 읽은 책은 <인 어 다크, 다크 우드>다. 상당히 잘 읽혀 다음 책도 구해 놓고 묵혀 두고 있다. 나의 특기 중 하나이지 않은가. 솔직히 이름에 약한 나에게 이 책의 제목도 쉽게 들어오지 않았다. 며칠을 읽는데도 말이다. 가독성이 좋아 진도가 쭉쭉 나가는데도 말이다.  ‘헤더브레’란 이름이 나에게는 어렵기만 했다. 소리 내어 자꾸 읽으면 이름이 잘 기억되겠지만 눈으로 읽다 보니 이런 현상이 더 심해진다.


데이비드 발다치가 루스 웨어를 우리 시대의 애거사 크리스티라고 불렀다. 아직 이 평가는 조금 미루어 두자. 처음 편지 형식으로 시작되는 것을 보고, 편지가 오고 가거나 날짜 별로 편지가 가지 않을까 예측했다. 그런데 둘 다 아니었다. 아이 돌보미가 무죄를 호소하면서 보낸 편지는 한 권의 장편 소설이 되었다. 가독성 있게 잘 읽히지만 이런 두께의 편지라면 몇 십 개로 나누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나중에 왜 이랬는지 알 수 있는 이유가 나오지만 쉽게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리고 작가는 몇 가지 반전을 숨겨 놓고 뒤에 하나씩 풀어놓는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구성은 아니다. 반전의 단서를 내가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로완은 유치원에서 일하다 좋은 조건의 구직 광고를 보고 지원한다. 스코틀랜드의 대저택에서 입주 돌보미를 하는 일이다. 연봉도 아주 높다. 마감 당일 자신의 이력서 등을 작성해 지원한다. 인터뷰 요청이 와 휴가를 내고 간다. 헤더브레 저택은 예전에 성으로 이용되었던 거대한 저택이다. 그런데 이 부부가 매입해서 집 전체를 스마트 시스템으로 연결해 놓았다. 앱으로 모든 일을 처리한다. 입구도, 전등의 불을 켜는 것도, 샤위기의 물 온도 설정도. 대단한 최신식 주택이지만 익숙해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작가는 영리하게도 이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등장시켜 불안과 짜증과 두려움을 뒤섞었다. 물론 이 시스템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무척 편리하다.


인터뷰를 마친 후 돌아가는 로완에게 둘째 딸 매디가 불안한 말을 전달한다. 이 말이, 그녀가 방에서 들은 이상한 소리들이 과거 헤더브레 저택에서 있었던 사건과 엮이면서 유령의 존재를 의심하게 만든다. 헨리 제임스의 고전 <나사의 회전>을 오마주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 작품을 읽지 않아 이 부분은 그냥 지나갈 수밖에 없다. 좋은 이력서와 추천서는 빨리 일 할 수 있다는 이유와 더불어 그녀를 고용하게 만든다. 빠르게 퇴사를 진행한 후 이 집에 온 그녀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그것은 바로 다음 날 이 부부가 회의 때문에 출발한다는 것이다. 아직 이 집에, 아이들에 익숙해지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혼자 아이들을 돌보면서 실수를 몇 번 저지른다. 아니 서로 친밀하지 않고, 낯선 돌보미와 함께 머물러야 하는 아이들에게도 이 일은 힘든 일이다. 이 아이들이 숨었는지 보이지 않아 찾아다니지만 결국 찾지 못한다. 해피 앱은 아직 익숙하지 않다. 갑자기 나타난 가사 도우미 아줌마는 아이들이 문밖에서 집에 들어오지 못해 추위에 떨고 있었다고 말하면서 적대감을 드러낸다. 로완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다. 아이들도 매디를 적대적으로 대한다. 쉽지 않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밤에 벌어진다. 천정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는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갑자기 집에 울리는 큰 소음은 또 어떤가. 앱으로 제어가 잘 되지 않는다. 결국 운전기사 잭이 와서 해결해준다. 그는 아주 익숙하게 아이를 돌본다.


아이들의 적대감, 이 집을 둘러싼 과거의 사건과 소문, 밤이면 들리는 괴상한 소음 등은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혹시 ‘유령이 있는 것 아니야’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첨단 기계로 가득한 집에서 들리는 고전적인 유령의 발소리라니. 힘든 육아와 수면 부족과 실직에 대한 두려움과 괴상한 소문 등은 이 불안감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아이들이 내뱉은 으스스한 말까지. 그런데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아이들 엄마는 이 소리를 듣지 못했을까? 이전 돌보미들이 떠난 이유도 이것 때문일까? 그녀를 살인죄로 기소했는데 죽은 아이는 누구지? 등이다. 이 모든 의문은 뒤로 가면서 하나씩 풀린다. 그리고 반전이 이어진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다. 이 반전이 앞에 펼쳐진 몇 가지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개인적 취향에 완전히 맞지는 않지만 영리한 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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