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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팜
조앤 라모스 지음, 김희용 옮김 / 창비 / 2020년 12월
평점 :
이 소설을 읽기 전 대리모에 대한 나의 생각은 불완전하고 단순하고 피상적이었다. 하지만 모두 읽은 지금 내가 언론을 통해 알고 있던 몇 가지 사례를 떠올리고, 이미 산업화된 사업의 시선으로 보게 만들었다. 소설을 읽다 보면 SF적인 상상력으로 발전하게 된다. 결국 대리모 대신 인공 자궁 시설에서 자라는 태아들의 모습이다. 수많은 SF 영화 속에서 이미 많이 보여준 장면이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 속 설정들은 그 과도기의 모습일 것이다. 아주 불편한 현실의 한 모습이다. 대리모란 것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사유리가 정자 기증으로 아이를 낳았다. 한국에서는 불법이라 일본에서 낳았다. 비혼 여성이 정자 기증을 받는 것이 불법인 나라에서 대리모가 가능해지기는 아주 먼 미래의 일이다. 하지만 이 대리모가 외국에서는 생각보다 쉬운 모양이다. 물론 일반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큰 비용이 들어간다. 실제 이 소설 속에서는 고령의 난임 부자들이나 자신의 경력을 망치길 바라지 않는 엄마들이 대리모를 통해 자신의 아이를 낳는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임신 기간이 사라지고, 대리모를 통해 낳은 아이만 받아 키운다. 당연히 이 아이들도 자신들이 직접 키우기보다 유모 등을 통해 키울 것이다. 생각이 다양한 방면으로 뻗어 나간다.
모두 네 명의 여성들이 화자로 등장해 이 산업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 대리모가 된 두 사람, 제인과 레이건과 이 일을 성공시켜 큰 돈과 경력을 쌓으려는 관리자 메이와 제인의 사촌이자 브로커 역할을 하는 아테 등이다. 작가는 이들 각자의 사연을 이야기 속에 녹여 내면서 점점 산업화되고 있는 대리모 제도를 보여준다. 내가 호나우도 등을 통해 알고 있던 간단한 대리모가 아니라 골든 오크스란 리조트 시설을 통해 관리, 통제되는 산업 이야기다. 수십 명의 대리모를 한 곳에 모아 놓고 관리하면서 생길 수 있는 문제점 등을 소설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 리사 같은 아웃사이드 한 명을 넣어 순응적일 수 있는 대리모의 반전을 이끌어낸다.
이 소설의 작가도 필리핀 출신이라고 한다. 작가의 이력을 보면서 메이 유에 그녀의 삶이 상당 부분 들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메이는 대리모 산업의 성공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중국 거부의 아이를 임신시켜 골든 오크스 같은 조직을 늘리는 것이다. 사업적인 측면에서 이 대리모들을 다루면서 이 조직 구성원들까지 관리해야 한다. 순간순간 생기는 사건과 사고는 법률적인 측면까지 고려해야 한다. 작가는 메이를 단순하게 이익만 생각하는 비정한 인물로 그리기보다는 그들의 현실에 공감할 수 있게 만들어 훨씬 입체감 있게 만들었다.
제인과 레이건은 대리모이지만 그들의 출발선은 다르다. 제인은 유모일을 하다 실수로 잘린 후 어쩔 수 없이 대리모가 된 반면 레이건은 자신의 미래와 난임부부를 돕는다는 선한 의지가 결합해서 대리모가 되었다. 대리모로 지내면서 받게 되는 급여와 출산에 성공하면서 받게 되는 보너스가 당연히 이 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생계를 유지하면서 아말리아란 딸까지 키워야 하는 싱글맘 제인에 비해 레이건은 부유한 아버지가 있다. 출산에 실패한다고 해도 각자가 받게 되는 충격의 강도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물론 레이건은 엄마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유전적 결함 문제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대리모와 관계가 없다. 다만 제인에게는 돌도 지나지 않은 딸과 떨어져 지내면서 생기는 불안감이 강하게 작용하고, 이것이 후반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테. 열심히 일하면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지만 병에 걸려 더 이상 보모일을 하지 못한다. 대신 그녀는 자신의 인맥을 통해 필리핀에서 온 여성들을 보모 등으로 소개한다. 선의에서 한 일이지만 소개비가 들어오기도 한다. 제인에게 보모일을 소개한 것도, 제인의 실수로 잘린 후 대리모로 연결시켜준 것도 아테다. 당연히 그녀는 소개 수수료를 받았다. 받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딸과 떨어져 지내는 제인에게 아테가 저지른 몇 가지 사소한 실수는 큰 공포로 돌아온다. 이 공포는 대리모 문제로 태아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실제 유전적 부모와 연결된다. 그리고 이 공포와 두려움을 골든 오크스는 적절하게 이용해 대리모를 통제한다. 일상의 산모들을 생각하면 과도한 통제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지만 거액의 산업이라면 다를 수 있다.
솔직히 말해 부분 부분은 재밌고 잘 읽혔다. 긴 시간을 들여 읽기에는 조금 힘든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쉼없이 달리게 만들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들이 이어지고, 새로운 사실들이 하나씩 밝혀지기 때문이다. 소개글처럼 이 소설은 단순히 대리모 문제만을 다루지 않고 다양한 인종적, 경제적, 계급적 문제들을 다룬다. 대리모의 학력이나 인종 등을 따지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것도 현실의 문제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에필로그는 어떻게 보면 해피엔딩이지만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이 대리모 제도가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인 것으로 변할 수 있다는 암시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전통적인 모성애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10개월 동안 자신의 배속에 품고 있던 시절이 끝났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한동안 생각의 가지들이 여러 곳으로 뻗어 나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