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수 있는 여자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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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애트우드의 첫 장편소설이다. 1993년에 <케익을 굽는 여자>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고 한다. 첫 번역이라고 생각했는데 잘못 알고 있었다. 이 소설은 탈고한 지 4년 만에 출간되었다. 가끔 유명작가의 첫 소설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출간되었는지 볼 때마다 놀란다. 그리고 이 작가가 얼마나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지 떠올리면 더욱 놀라운 일이다. 출간될 당시 페미니즘이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하던 시기였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페미니즘 운동의 소산으로 간주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프로토페미니즘 문학’이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개인적으로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들을 좋아한다. 생각하지 못한 재미를 누린 작품들 때문이다. 대표작 중 몇 편은 사놓고 묵혀두고 있고, 몇 작품은 위시리스트에 올려놓았다. 시간적 여유가 있을 당시 두툼했던 작가의 소설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은 어떤 책이라도 읽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처음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고, 기묘한 관계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 지 의문이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문제가 될 인물이나 상황들이 자연스럽게 묘사되어 있다. 미성년자에 끌리거나, 임신했는데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등의 행동 말이다. 뭐 노땅인 나에겐 예전에 늘 봤던 일이지만.


메리언 매캘핀은 설문조사 회사에서 설문지 만드는 일을 한다. 까다로운 집주인과 변덕이 심한 룸메이트 에인슬리를 두고 있다. 대학 동창 클래라는 학업 중 결혼을 해서 두 아이를 낳았고, 셋째를 임신 중이다. 그녀 자신은 변호사인 피터와 사귀고 있다. 밖에서 볼 때 아무 문제없는 상황 속에서 살아간다. 평범한 일상이다. 그러다 맥주 관련 설문 조사를 하게 되는데 이때 조금 이상한 남자를 만난다. 대학원생 덩컨이다. 첫 인상은 열여섯 소년 같았는데 실제는 나이가 있다. 하지만 이 나이보다 그의 기이한 행동과 표현이 눈길을 끈다. 메리언이 심리적 갈등을 겪을 때 그는 ‘그 문제는 당신의 것’이라고 선을 긋는다. 자신의 문제만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녀는 우연히 만나는 순간이 늘면서 그에게 이상하게 끌린다.


남자 친구 피터는 잘 생겼고, 직업도 좋다. 소설 속에서도 말했듯이 남에게 보여주기 좋은 남자 친구다. 문제는 그가 메리언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인물인데 이상하게도 메리언이 작은 일탈을 벌인 후 그녀에게 청혼한다. 결혼을 준비하면서도 메리언은 덩컨을 계속 만난다. 그가 그녀를 잘 배려해주고, 이해하는 행동을 한다면 납득할 수 있지만 그는 그의 감정에 더 충실하다. 그것도 아주 노골적으로. 어쩌면 이런 솔직함이 그녀는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그와의 가벼운 입맞춤과 터치는 부도덕한 일인데 그녀는 멈추지 않는다. 피터와 불편해지면 오히려 그를 찾는다. 이것은 피터와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는 무의식의 발로인지도 모르겠다.


덩컨이 괴상한 남성이라면 룸메이트 에인슬리로 마찬가지다. 자유분방한 연애를 하고, 남편 없이 애를 낳으려고 한다. 유전적으로 문제 없는 남자를 선택해 임신하려고 계획한다. 이 계획이 잘 진행되는데 나중에 이것이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기 위해 타인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메리언은 피터가 청혼한 다음부터 육식에 대한 거부감이 생긴다. 점점 이 범위는 넓어진다. 살이 빠져 마를 것 같은데 면을 많이 먹어서 원래 체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할 때 내 몸매를 돌아보게 되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점점 줄어들지만 피터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덩컨의 말처럼 그녀만의 걱정이다. 이 걱정의 원인은 예상한대로 였지만 그 해결 과정은 예상하지 못한 일탈과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마지막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해설을 보면 많은 상징들이 들어있다고 하는데 그 시대의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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