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피라미드사회 - 능력주의가 낳은 괴물
하승우 지음 / 이상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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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로 ‘능력주의가 낳은 괴물’이 달려 있다. 최근에 능력주의의 문제를 다룬 책을 한 권 읽었기에 낯설지만은 않다. 그 책은 미국의 현실을 다룬 것이고, 이 책은 우리의 현실을 다룬다. 하지만 그 바탕에 깔린 능력주의는 동일한 것이다. 이전에는 사실 이런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책을 그렇게 눈여겨보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나 자신이 능력주의를 그대로 믿고 살았다고 해야 한다. 물론 이 능력주의가 우리사회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조금씩 낌새를 챈 것은 좀 더 되었지만 말이다. 단지 낌새만 약간 안 정도일 뿐이다.


겨우 두 권의 능력주의 비판 책을 읽고 능력주의 허실을 파악할 정도로 능력이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이 책들을 읽으면서 나 자신이 알게 모르게 그 능력주의에 깊이 빠져 있었다는 사실은 알게 되었다. 아마 실무에서라면 이 능력주의를 앞세워 일하기를 더 좋아할 것이다. 그래야 내 일이 조금은 편할 테니까. 하지만 저자가 쓴 네 꼭지의 이야기는 나 자신조차 무의식 속에 옹호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당연히 반성하고, 앞으로의 내 삶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이 두 책을 읽을 때 같이 고민한 부분이다.


민주화가 왜 신분피라미드를 무너뜨리지 못했나? 하는 질문은 학창 시절 그 수많은 민주 운동가들이 회사만 들어가면 재벌의 개가 되어 움직일까? 하는 의문과 이어졌다. 학생 운동으로 감옥까지 갔다 온 선배가 재벌의 이익을 위해 기자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알게 되었을 때 조금은 깨달았지만 말이다. 실제 1장은 이전에 읽었던 책의 한국 버전 요약본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능력주의를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비례해 보상을 해주는 사회 시스템”이라고 말하고, 군사독재와 시민사회운동이 이 능력주의를 공유했다고 했을 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운동권의 능력이 이끌어낸 사교육 시장은 낯설지만 끔찍한 현실이고, 채용비리를 둘러싼 재판 결과는 또 다른 능력으로 비추어지는데 부족함이 없다. 혈연, 지연, 학연 등으로 촘촘하게 엮인 한국의 현실을 생각하면 이 신분피라미드가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도 작은 균열이나마 내어 다음을 도모하자고 할 정도다. 이런 문제의식은 공간과 시간으로 이어진다. 공간은 도시와 농촌, 수도권과 지방으로 나누어진다. 시간은 노동시간보다 자유시간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도시와 농촌의 차별이 얼마나 서울에서 공고화되어 있는지는 학창시절부터 느꼈다. 지방 출신인 나에게 서울 친구는 집에 가는 나를 보면 시골 가냐? 고 물으면서 서울 이외 지역을 모두 시골이라 부르면서 차별했다. 공간의 차별을 이런 식으로 당할 줄은 몰랐다.


한때 지방소멸론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 용어가 “인구가 줄어드는 불안감(인구감소 쇼크!)을 이용해 중앙부처가 만들어낸 신자유주의 전략”이라고 할 때 아직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존재를 시장 가치로 환산하는 나쁜 버릇이 생긴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낯익은 파견근로제이지만 한때는 아주 낯선 제도였다. 일본 드라마를 보면서 알게 되었는데 이젠 너무 흔한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지만 이 제도를 제안한 것이 공무원이란 사실은 처음 알았다. 그 인물들의 이후 출세가도를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것도 사람들은 ‘능력’이란 단어를 사용해 설명한다. 불편한 현실이다.


시민운동마저 능력주의에 포획되었다고 했을 때 한국의 능력주의가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조금씩 인식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고,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이야기들이 다시 이 부분에서 다루어진다. 이 꼭지에서 잠시 다루고 있는 대기업의 환경보호에 신경 쓴다는 이미지 광고와 가리고 있는 현실의 관계는 나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부분이다. 모금이 운동을 압도하는 상황을 설명할 때는 나도 뜨끔했다. 적은 돈으로 내 양심의 부담을 살짝 덜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는 신분이 제공하는 노력을 강조했는데 세부적인 부분에서 이전 책 <엘리트 세습>과 다른 부분이 있다. 한국은 오히려 귀족사회처럼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과한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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