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 마녀 또는 아그네스
해나 켄트 지음, 고정아 옮김 / 엘릭시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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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작가가 아이슬란드에서 마지막으로 사형된 인물의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작가는 아이슬란드 교환학생 시절 아그네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가슴 속에 계속 품고 있었다. 박사 과정에 이 소설을 썼는데 아그네스와 연관된 살인 사건, 판결, 처형 사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평가 등의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였다. 제목에 살인자와 마녀란 단어가 들어가 있어 내가 예상한 아그네스의 강렬한 이미지는 책을 읽어나가면서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작가는 앞의 두 단어보다 아그네스와 그녀를 가둔 집과 그녀를 회개시키려는 토티 부목사의 시점을 넣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아이슬란드 소설을 읽을 때면 늘 그 긴 이름에 고생한다. 아그네스의 이름도 아그네스 마그누스도티르고, 애칭이 토티인 소르바르뒤르 욘손 부목사의 이름도 쉽지 않다. 코르든사우 농장의 두 딸도 스테인뵈르와 시귀르들뢰이흐 욘스도티르로 발음조차 힘들다. 대신 애칭으로 나오면 조금 쉽다. 이전에도 어떤 소설에서 본 것 같은데 아이슬란드에서 이름 뒤에 ‘~손’은 ~의 아들이란 의미고, 딸은 ‘~도티르’를 붙인다. 이름만 보면 누구의 아들, 딸인지 알 수 있다. 이 이름 때문에 아그네스가 나중에 마그누스 대신 다른 이름을 붙여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사형 집행이 확정된 후에 임시 구금 목적으로 아그네스를 코르든사우 농장으로 보낸다. 이 집의 아내 마르그리에트는 이것이 불안하고 불편하다. 두 딸 때문이다. 남편이 공무원이다보니 이것을 거부할 수 없다. 아그네스는 남루한 모습을 하고 이 집에 온다. 그녀의 자산은 모두 그녀의 수감과 이동 비용으로 다 처분된 상태다. 그리고 아그네스는 회개를 위해 소르바르뒤르 욘손 부목사를 선택한다. 그가 예전에 자신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그런데 코르든사우 농장의 큰딸 스테이나도 어릴 때 아그네스가 자신들을 친절하게 대했다는 말을 한다. 동생 뢰이가와 달리 감상적이고 이상적인 면이 있는 그녀다.


농장에 그녀를 묶어두고 언제가 될지 모를 처형일을 기다릴 수 없다. 마르그리에트는 아그네스가 할 수 있는 일을 묻고, 일을 시킨다. 아그네스는 어린 시절 엄마에게 버림받고, 여러 집들을 돌면서 일한 경력이 있다.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죽인 나탄도 그녀가 일한 집의 주인이다. 나탄은 그 시대의 의사 역할을 하는데 상당한 바람둥이다. 아그네스는 그의 아내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에 그의 집으로 옮겼다. 이런 그녀의 과거사는 이야기 중반이 넘어가야 조금씩 흘러나온다. 그래서 혹시 그녀가 나탄을 죽이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기도 한다.


부르기 힘든 이름을 제외하면 가독성이 상당히 좋다. 사람에 따라 아그네스는 살인자이거나 마녀로 불릴 것이다. 아그네스라는 한 여성으로 그녀를 보는 사람들은 몇 명 되지 않는다. 무지와 두려움이 엮여 이상한 소문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읽으면서 갑자기 아그네스가 발작을 하고, 깊은 슬픔을 느끼는 장면이 나오는데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고, 오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읽은 지금 그 장면이 강하게 가슴 속에 파고든다. 그녀의 아픔과 슬픔과 고독이 한 번에 집약된 장면이다. 이것을 알게 되는 것은 그녀의 사연을 모두 안 다음이다.


영상이나 사진으로 본 아이슬란드의 풍경은 아름답다. 하지만 소설 속 자연환경은 추위와 공포의 대상이다. 불씨를 꺼트리면 한 겨울에 얼어죽을 수 있다. 한 겨울 토티 목사는 병이 나 아그네스를 만나러 가지 못하고, 아그네스는 그마저도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아그네스와 대화를 나눌 공간이 없어 집 안 모두가 들을 수 있는 곳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이 때문에 생기는 작은 마찰은 또 어떤가. 마지막 사형수라고 하지만 행정적인 부분이나 이것을 막으려는 노력 등은 생략되어 있다. 너무 뻔한 상황이기 때문일까? 긴장감을 고조시키거나 놀라운 반전이 펼쳐지지는 않지만 한 여성의 삶이 어떻게 몰락하는지는 잘 표현되었다. 잔잔한 여운이 계속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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