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로 간 스파이
이은소 지음 / 새움 / 2020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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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 소개를 읽고 약간 거부감이 들었다. 북한 남파 공작원이 서울의 중학교 교사로 잠입해 중2를 상대한다는 설정 때문이었다. 인민군 최대 강적 중2병 환자들의 선생이란 설정이 너무 진부해보였다. 그러다 서점에서 이 책 표지와 안쪽을 잠시 훑어보고 알 수 없는 관심이 생겨 선택했다. 여기에 작가의 전작에 대한 호평도 물론 한몫했다. 그리고 이 선택은 책을 읽자마자 옳았음을 알게 되었다. 예상한 것보다 훨씬 탄탄한 문장과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읽지 못한 작가의 다른 작품으로 관심이 뻗어나간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해주는 남파 공작원 훈련을 받고 내려오던 중 남한의 전투함에 발견된다. 다른 조원들이 죽는 사이 방탄조끼 덕분에 운 좋게 죽지 않는다. 접선 장소에 도착해 죽으려는 사이 남파공작원 황 사장이 그녀를 죽지 못하게 막는다. 그의 집 옥탑방에서 살면서 남한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한다. 편의점 알바, 피시방 알바 등을 하면서 훈련을 몸에 붙인다. 처음 그녀가 황 사장의 집에서 음식을 먹고, 남한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살아온 곳과의 차이를 표현하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우리에겐 너무 익숙한 현실이지만 늘 배고픔과 결핍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낭비로 비추어진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음식의 맛은 또 어떤가.


감정을 지우는 훈련은 받은 그녀는 속으로 남한의 자본주의를 비웃는다. 그러다 편의점 앞에 세워둔 스쿠터가 도난당하는 장면을 보고 달려가 아이들을 잡는다. 처음 강석주 선생과 학생들을 만나는 순간이다. 선생은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고 부탁하는데 간첩인 그녀가 바라는 바다. 이렇게 석주와 해주는 엮이기 시작한다. 이후 어리바리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는 석주의 모습을 보고 해주는 그를 이용할 생각을 한다. 실제 가짜로 만든 신분증과 자격증을 이용해 계약직 선생이 되었을 때 석주는 아주 필요한 순간마다 해주를 도와준다. 이 장면을 보면서 둘의 로맨스를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된다. 만약 로맨스로 이어졌다면 작품은 이상해졌을 테지만.


북한의 남파공작원은 남한 사회의 이방인이다. 이 이방인이 본 학교의 모습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공간이다. 이 이방인의 시선은 우리의 교육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선생과 학생의 관계, 선생과 선생들 사이의 관계, 학생과 학생의 관계, 학교와 학부형의 관계 등이 나오는데 길지 않지만 분명하게 그 문제점을 보여준다. 사실 여부보다 관계에서 누가 우위에 있는지에 따라 갑을 관계가 뒤바뀌는 현실은 가슴 아프다.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그 상황을 넘어가기에 급급한 학교의 모습은 또 어떤가. 결코 낯설지 않은 상황들이다. 물론 이 낯선 시각으로만 이야기를 채웠다면 아주 건조했을 것이다.


이야기는 중반으로 넘어가면 반전처럼 상황이 바뀐다. 이 바뀐 상황이 개인적으로 아쉽다. 남파공작원이 중2들과 관계가 더 깊어지고, 어리바리한 석주 선생과 썸을 타는 장면이 더 나왔어도 좋았을 텐데 말이다. 얼어붙은 감정에 좀더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어주면 더 좋고. 작가는 이 남파공작원의 신분을 망각하지 않고, 이 간첩을 주시하고 있던 사람을 보여주면서 단순히 낭만적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지 않는다. 남북분단의 현실을 그대로 직시한다. 어쩌면 그래서 더 여운이 길게 남는지도 모르겠다. 해주의 웃는 얼굴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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