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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8월
평점 :
<골든애플>로 처음 만난 작가다. 혼란스럽지만 대단하면서 뭐지라는 느낌을 받았던 작품이었다. 이후 이 작가의 작품을 한두 권 더 사놓았는데 왠지 모르게 제목 때문에 손이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단편집이 나왔다. 이사라는 누구나 한 번 이상은 경험한 일을 소재로 다루었다. 개인 이사, 가족 이사, 직장의 이사 등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도시 괴담과 엮어 풀어내었다. 읽으면서 서늘한 기분이 들었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놀라기도 했다. 그러다 반복해서 눈에 들어오는 이름도 있었다. ‘뭐지?’ 이 의문이 풀린 것은 <작품 해설>이란 단편(?)에서 풀린다.
각각 독립된 단편이지만 연결되는 작품도 있다. <문>, <상자>, <끈> 등이 그렇다. <문>은 자신이 사는 집이 연쇄살인범이 살았다는 사실을 알고 이사를 결심한다. 마음에 드는 집이라고 생각하고 둘러보는데 몇 가지가 신경 쓰인다. 흰 벽에 나 있는 작은 구멍이다. 이렇게 이 집을 선택하지 않을 꼬투리를 잡아가는데 비상구를 발견한다. 문제는 이 비상구다. 열고 들어갔지만 나오지는 못한다. 휴대폰도 사용불가다. 그리고 관리인이 말했던 전철 사고가 꿈과 이어진다.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고, 돈벌레가 나오고, 의미심장한 마무리로 상상력을 자극한다.
<수납장>은 교묘한 서술로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다시 앞장을 확인하게 된다.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의 엄마, 아이가 그린 존재하지 않는 아빠의 그림, 이사 전날 우유부단한 성격 탓에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짐 정리 등이 엮이고 꼬인다. 그리고 조용히 드러나는 죽음의 흔적들. 섬세하게 읽어야 하는 단편이다. <책상>은 이삿짐센터에 취직한 한 주부의 시선을 따라간다. 이 이삿짐센터 왠지 수상하다. 사장 누나가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 한 통을 급하게 먹는 장면이 나온다. 그만둘까 고민하는데 책상 서랍에 낀 종이 한 장을 발견한다. 직장을 먼저 그만두고자 한 사람의 편지다. 마지막 장에서 반전이 펼쳐지는데 서늘하면서도 코믹하다.
<상자>는 직장 이사를 다룬다. 자신이 표기한 짐들은 오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짐만 자기 앞에 쌓인다. 유미에는 계약직 여성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정직원의 갑질이 여기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신입들이 계약직 아줌마들에게 찍히면 엄청 고생한다. 이 사내 왕따를 기반으로 예상하지 못한 결말을 이끌어낸다. 이때 한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벽>은 계약직 프로그래머들의 이야기다. 하야토가 어린 시절 겪었던 가정 폭력의 악몽을 꾼다. 잠을 깨기 위해 흡연실에 가서 다른 입사 동기 기요시를 만난다. 기요시는 자신이 사는 집에 상당히 만족한다. 그런데 옆집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온 후 소음이 생긴다. 가정 폭력이 벌어지는 것 같다. 신고한다. 그리고 하야토의 고백과 함께 예상 가능한 일이 벌어진다.
<끈>은 호러 게시판으로 시작한다. 사야카는 이 게시판을 즐겨본다. 자신에게 무서운 일이 생기는 것은 좋아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의 경험은 아주 좋아한다. 하나의 이야기가 중단된 뒤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데 <상자>와 이어진다. 뭐지? 그녀는 이사를 자주 한다 한 집에 오래 살지 못하는 성격이다. 이번 집도 이전 집 계약 만기로 이사왔다. 그런데 이 집 왠지 낯익다. 그녀의 취미 중 하나가 거리뷰를 보는 것인데 <문>의 한 장면이 그곳에 등장한다. 비상구 밑에 뭔가 끈 같은 것이 보인다. <문>의 마지막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이 집은 호러 게시판의 이야기에 등장한다.
이 단편집에서 가장 서늘하고 단편들을 읽으면서 가진 의문들이 한 번에 해결되는 단편이 바로 <작품 해설>이다. 작가는 이 해설부터 읽어서 다행이라고 말하지만 읽으면 재미가 반감된다. 이 단편은 앞에 나온 단편들에 담겨 있지 않은 이야기들의 해설이자 첨부 설명이다. 대충 설명한 연쇄살인범이나 의심 가득한 상황에 대한 분명한 설명을 담고 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가 놓친 것들을 하나씩 복기한다. 그러다 마지막 문장에서 다시 한 번 ‘뭐지?’를 내뱉는다. 어둡고 서늘하고 끈적거리고 유쾌하지 않지만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