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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레터
이와이 슌지 지음, 문승준 옮김 / 하빌리스 / 2020년 7월
평점 :
이와이 슌지의 영화는 몇 편 봤지만 소설은 처음 읽었다. 그의 영화 대표작 중 <러브레터>는 “오겡끼데스까”란 대사로 유명하다. 나카야마 미호가 눈밭에서 이 대사를 외치는 장면은 지금도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한국에서도 많은 패러디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솔직히 말해 <러브레터>를 그 당시 불법비디오로 봤는데 화질도 좋지 않고 나의 감성과도 맞지 않았다. 아마 내가 기대한 것과 다른 내용이고, 졸면서 봤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후 그의 소설이 출간된 후 그의 글에 대한 좋은 평가를 봤다. 왠지 모르게 그의 소설에 손이 나가질 않았다. 절판본도 많다. 샀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멍청했다.
이 소설도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한 번 보고 싶다. 내가 좋아했던 마츠 다카코가 여주인공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4월 이야기> 속 그녀 이미지와 어떤 변화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아마 1인2역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토사카가 평생 동안 잊지 못하고 있는 미사키와 그 여동생 유리 역으로 말이다. 학창 시절은 다른 배우가 맡았는데 솔직히 누군지 모르겠다. 일본 드라마나 영화를 보지 않은지 몇 년 되었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굉장히 정적인 느낌이 영상으로 옮겨질 때는 어떤 느낌일지도 궁금하다.
“네가 죽은 건 작년 7월 29일이었다.”란 첫 문장과 이 사실을 알게 된 8월 23일이란 문장으로 시작한다. 3주가 지나는 시간 동안 일어난 일들을 작가는 소설로 썼다. 24년 동안 잊지 못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동창회에 가서 그녀의 여동생을 만난 다음 일어난 일들이다. 오토사카의 시선이 한 축을 맡고, 유리가 다른 한 축을 맡는다. 언니의 죽음을 알리러 갔다가 오해한 선배들 때문에 미사키인 척한다. 오토사카는 첫눈에 유리임을 안다. 속이고, 속는 척하는 사이 오해가 끼어든다. 오토사카가 미사키에게 보낸 문자를 본 유리 남편의 질투로 휴대폰이 깨진다. 이후 유리는 손 편지로 그에게 자신의 일을 적어 보낸다. 처음에는 이 편지 내용을 보고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유리의 시선으로 넘어가면서 사실임이 드러났다.
오토사카는 소설가다. 딱 한 편을 내었을 뿐이지만. 그 소설의 제목은 <미사키>다. 작가지만 소설을 출간해서 돈을 벌지 않고 비둘기 관련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다른 여자를 만나 새로운 삶을 살 수도 있을 텐데 그는 첫사랑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소설가가 된 이유도 그녀가 소설가란 단어를 말했기 때문이다. 그의 첫 소설도 그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다.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면 그는 소설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가 첫 소설을 낸 후 소설을 출간하지 못한 이유다. 그가 처음에는 유리로부터, 나중에는 미사키와 유리의 딸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이 편지들은 현재와 과거의 기억을 이어준다. 말이 아닌 글로 감정을 표현할 때 감정은 절제된다.
소설은 가독성이 좋다. 분량도 많지 않다. 하지만 정적이고, 감정의 표현이 격렬할 때조차도 왠지 모르게 고요하게 다가온다. 일본 문화 속에서 자주 보게 되는 억눌린 감정이 글 속에 표현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기억과 추억에 묶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그를 보면서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는 것은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그 감정을 머릿속에서 이해한다고 생각해도 말이다. 유리가 남편에게 스트레스를 받고 그대로 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납득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일들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들고, 조금은 정적인 분위기를 활기차게 끌고 나간다. 아마 이 부분이 없었다면 상당히 처진 분위기의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미사키가 그를 떠난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녀가 남편의 학대 속에서 살아야 했던 이유도. 그 남편이 어떤 매력이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영화를 보면 알게 될까? 그녀의 죽음과 자신의 아이들에게 남긴 유언장은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일지도 모른다. 간결하고 섬세한 묘사를 읽으면서 일본 영화 감독들 중에는 좋은 글을 쓰는 소설가도 상당히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자신의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드니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놓고 묵혀두고 있는 이와이 슌지의 소설을 꺼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