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읽는 남자
안토니오 가리도 지음, 송병선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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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주인공인 송자라는 이름은 낯설지만 그가 쓴 법의학서 <세원집록>은 낯익다. 조선 시대 살인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서적이 바로 이 책이기 때문이다. 역사상 최초의 법의학서로 인정받고 있는 모양인데 1247년에 5권으로 간행되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하니 인용할 수밖에 없는데 놀라운 것은 곤충학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물론 현대 법의학과 비교하면 부족한 부분이나 오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검시법에 대한 설명을 다룬 부분을 보면 현대 법의학자의 모습이 보인다. 늘 읽을 때마다 어디까지 사실인지 궁금했는데 이 소설이 어느 정도 그 부분을 채워준다.


13세기 중국의 한 인물을 스페인의 작가가 팩션으로 그려내었다. 그가 그려낸 이 시대 사람들과 문화는 왠지 모르게 어색한 부분이 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진다. 로베르트 반 홀릭의 추리 소설을 읽을 때도 이런 느낌을 받았다. 서양인이 본 동양의 문화나 심리 묘사는 현재의 내가 상상한 것과 상당히 괴리가 있다. 누가 더 가까울까 하는 것은 솔직히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나 자신도 이미 많은 문화의 영향 아래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괴리감은 다음에 천천히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소설은 송자의 아버지가 부모님의 죽음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온 다음부터 시작한다. 좋은 교수 밑에서 좋은 교육을 받던 송자는 그 기회가 끊어진다. 고향에서 형이 집안을 떠받치고 있다. 체력이 딸리는 송자는 형에게 구박을 받는다. 그러다 머리가 잘린 시체가 밭에서 발견된다. 이 사건이 송자 집안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 때문에 명판관 펭이 개입한다. 정황증거와 증거품 하나가 범인을 루라고 가르킨다. 그리고 송자가 연모하고 있던 여인의 집에 있는 동안 집은 의문의 사고로 불탄다.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아픈 여동생만 겨우 구한다. 아주 힘든 앞날이 그 앞에 놓여 있다.


이후 송자는 집 전재산으로 형을 구하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이 돈을 가지고 여동생과 달아난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녹녹하지 않다. <레미제르블>의 자베르 경관처럼 그를 쫓는 인물이 있다. 여기서도 달아나야 한다. 시체를 읽으면서 사인을 찾아내고, 이 단서를 기반으로 범인을 추론하는 그의 지식과 관찰력은 여러 사람에게 유용하다. 그리고 그는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병을 앓고 있다. 이런 그의 재능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한다. 여동생의 약값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이 재능을 팔아야 한다. 그의 관심과 열정이 대학에 있다고 해도 말이다.


작가는 앞부분부터 송자의 탁월한 직관력과 법의학적 지식을 버무려 살인 사건이나 죽음의 원인 등을 해결한다. 송자를 아주 비참한 상황으로 몰아놓고, 그가 운과 노력 등으로 이 상황을 헤쳐 나가게 한다. 그의 지식을 탐내고 질투하는 인물도 나타나고, 그를 도와주려는 사람도 나온다. 그의 지식을 이용해 관직에 올라가는 인물도 나오고, 이 인물과의 대결 구도는 또 하나의 재미난 에피소드가 된다. 고난의 연속이지만 그때마다 어떻게든 그 상황을 넘어간다. 이 소설에서 가장 예상하지 못한 반전은 황궁에서 일어난다. 욕망, 진실, 암투, 권력 등이 엮이고 꼬이면서 정신없이 읽게 만든다. 앞부분에서 느낀 답답함은 어느 순간 사라진다. 실제 송자의 고난은 읽는 동안 아주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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