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전쟁
이종필 지음 / 비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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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물리학 교수가 양자역학, 인공지능 등을 기반으로 쓴 하드 SF다. 하드 SF라고 썼지만 책을 끝까지 읽고 난 후 느낌은 인공지능과 양자역학을 소설로 풀어쓴 느낌이 더 강하다. 어떤 대목에서는 김진명의 소설 느낌도 조금 난다. 하드 SF라고 썼지만 개인적 느낌은 테크노 스릴러다. 물론 테크노 스릴러 거장들의 작품에는 비교할 수 없다. 분량도 그렇게 많지 않는데 덕분에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긴장감을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갈등 구조를 너무 직선적이고 간결하게 표현했다. 충격적인 도입부와 매력적인 설정을 가진 소설인데 말이다.


광화문 사거리, 이순신 장군 동상에 머리 없는 시신이 걸린다. 이 시신은 드론으로 운반되었다. 이 시체의 정체는 무엇이고, 누가 이 시체를 이순신 장군 동상에 걸었을까? 매력적인 도입부다. 그리고 작가는 세 명의 주요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인공지능 전문 교수 조성환, 과학 잡지 기자 하영란, 이 사건의 담당 형사 윤태형 등이다. 하영란은 조성환에게 전화해 이 사건을 알리고, 그의 전문지식의 도움을 받으려고 한다. 이 세 명은 경찰서에 모여 시체의 운반과 몸에 남은 흔적 등을 논의한다. 드론 운반은 가능하고, 몸에 박힌 수많은 못들은 무언가를 가리킨다. 타카총으로 박았고,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고 말한다.


과학 영역으로 넘어가면 작가의 전문분야가 흘러나온다. 타카총으로 인간이 이렇게 쏘려면 얼마나 힘든지, 인공지능이 할 경우 어떤 흔적이 남는지. 그러다 이야기는 인공지능을 넘어 양자역학으로 넘어간다. 양자역학의 개념을 간단히 설명하고, 이것을 통해 어떤 일이 가능한지 알려준다. 내가 초보적으로 아는 것 이상의 정보가 담겨 있다. 뒤로 넘어가면 이 과학 지식이, 정보가, 기술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기에 구한말 고종을 엮고, 친일파 문제를 간단히 연결시킨다. 비밀결사조직도 등장시키는데 개인적으로 조금 무리수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대학 내부의 권력 관계, 성폭력 문제 등을 간단하게 집어넣는다. 이 대학과 연구소는 새로운 과학 기술의 중요한 원천이다.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터를 등장시키고, 연결하면서 새로운 과학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중 하나가 시체의 몸에 박힌 수많은 못들이 만들어낸 이미지의 정체다. 조성환이 파고들고, 경찰이 조사한 결과는 과거의 사건이다. 이때 이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조성환의 후배가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자살이 몇 년 전 국정원 직원 자살과 비슷하다. 후배가 남긴 문자 메시지를 단서로 암호를 풀고, 그가 남긴 자료를 찾아낸다. 놀라운 정보가 담겨 있다. 이 정보를 하영란과 윤태형에게 공유한다.


이 소설은 사건이 발생하고, 단서를 찾아내는 것도 비교적 간단하다. 중요한 정보의 공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처리한다. 친일 문제와 함께 공권력을 이용한 살인에 대해서도 분명한 의견을 내놓는다. 국가 권력 사이의 알력도 너무 간단하게 처리해 뭔가 허전하다. 분량을 엄청 더 보강해 갈등 구조를 만들고, 첨단 기술을 둘러싼 암투도 집어넣고, 등장인물들이 좀더 위험하고 좀더 노력하는 모습이 나왔으면 좋겠다. 국가 부의 증대와 개인의 윤리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은 작가의 오랜 관심사다. 이때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황우석 사태다. 소설의 구성이나 재미는 조금 취향을 타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과학 지식과 정보 등은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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