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팔레트 문학과지성 시인선 540
강혜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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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시집 중 가장 어렵고 힘들게 읽었다. 시인이 글로 풀어낸 이미지나 감정을 제대로 포착해내지 못하면서 단순히 단어만 읽은 시들이 많다.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책 마지막에 실린 해설을 대충이나마 읽게 되었다. 그리고 사진가 파란피를 인터넷에서 검색했다. 페이스북을 찾아 사진을 훑어보니 강렬한 느낌을 주는 인물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해설에서 본 퀴어란 단어 때문인지 사진들 중간에 나오는 영화 캐롤의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무지개란 단어를 제목에서 찾아보고, 읽으면서 기이하게 느낀 ‘오모homo’란 단어도 다시 돌아본다.


퀴어란 단어를 생각하지 않고, 시집을 읽으면서 사랑이란 감정을 가장 잘 느낀 작품은 <여름 서정>이다. “주먹보다 두꺼운 감정은 처음이야/ 내 안은 돌멩이로 가득 찬 줄 알았는데/ 찰랑찰랑 물소기가 나 ”라고 말할 때 이 뜨거운 여름을 날려버리는 시원한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 그 사랑이 지속될 때 “손가락에 난 점을 세어본다/ 한 그루 두 그루, 너도 다 알잖아” 같은 표현이 가능해진다. 이런 구조와 표현의 시로 가득했다면 좀 더 쉽고 편안하게 시들을 읽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파편적인 이미지와 시어로 가득 찬 시를 마주할 때 그냥 나아갈 수밖에 없다.


시집을 다 읽은 후 다시 대충 펼쳐 몇 곳을 읽었다. 어렵게만 생각하고 지나갔던 시들 중 눈에, 마음에 들어오는 시어들이 있다. 표제작인 <밤의 팔레트>도 그렇다. “노랑과 옐로는 너무 많은 밤을 오렸다. 성별이 다른 별을 꿰매는 건 위험해/ 우리는 틀린그림찾기처럼 조금만 달랐는데/ 왜 아들은 두 글자일까” 이 시를 처음 읽을 때도 이 부분은 눈길을 끌었다. 그때보다 더 명확하고 강렬하게 다가온다. 성별의 구분이 우리 삶을 어떻게 나누었는지 생각하면 다시 생각이 많아진다. “나와 언니를 섞으면 하얗게 된다/ 나에게 누나를 바르면 까맣게 된다”고 했는데 언니와 누나, 섞고 바르는 차이는 무얼까? 단순히 부른 이의 성별 차이일까? 아님을 안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오래 전 한국 시인들의 시집을 읽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이미지도 만들지 못했던 그 시집들. 그리고 강한 충격을 주었던 박노해와 김남주의 시들. 올해 읽었던 시집은 거의 한 시인의 시집이었다. 바로 나태주 시인이다. 짧고 비교적 쉬운 시어들로 된 시에 나도 모르게 길들여진 모양이다. 아니면 너무 급하게 시에 달려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시집에는 해시태그가 들어가 있는 시도 있다. 인위적으로 굵게 표현한 단어도 있다. 강조를 위해 다른 글자체를 이용하기도 했다. 지금 이 시집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지만 몇 개의 이미지들은 강한 인상을 남겼고, 언젠가를 또 한 번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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