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심너울 지음 / 아작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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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심너울의 SF 단편들을 열심히 찾아서 읽고 있다. 앤솔로지나 여러 작가의 단편모음집을 제외하면 거의 다 읽은 것 같다. 이렇게 적고 보니 많은 작품을 출간한 것 같은데 단편집은 딱 두 권이다. 장편이 한 편 있는데 올해 안에 시간내어 읽어보고 싶다. 심너울이란 작가를 처음 발견한 것도 안전가옥 앤솔로지 중 한 권인 <대멸종>이었고, 그의 단편집을 처음 읽은 것도 역시 안전가옥이었다. 그런데 이제 SF전문 출판사인 아작에서 단편집이 나왔다. SF 분야만 한정하면 배명훈, 김보영 이후 처음으로 깊은 관심을 가진 작가다.


이 작품집에 관심을 가지게 된 데는 <SF 클럽의 우리 부회장님>에 나오는 설정 한 가지 때문이다. 작가의 후기에 의하면 한국의 어느 회사와도 관련이 없다고 선을 긋는데 이 부분이 옛날 영화 <투캅스>의 오프닝을 떠올리게 만든다. 한 연구소의 직원들이 인센티브 대신 동호회를 만들어 활동하게 만들고, 이들 중 몇 명이 SF 모임을 만들면서 생긴 이야기다. 이 모임 속에 한 명이 작가고, 이 작가가 클럽 사람들을 SF 덕후로 만든다. 그러다 쓰러진 채 죽지 않고 10년을 버틴 회장님과 상속세 등의 문제가 있는 부회장님 이야기가 겹친다. 누가 금방 떠오르지 않는가. 작가가 관계없다고 하니 우연으로 치부하자.


<초광속 통신의 발명>은 짧은 단편이다. 퇴근해도 퇴근이 아닌 현대인의 삶을 알 수 없는 과학과 연결시켰는데 솔직히 뭔지 모르겠다. 하지만 ‘퇴근하고 싶은 기분이 시간을 초월해 과거로 흘러간다’는 부분에선 왠지 모르게 공감한다. <저 길고양이들과 함께>란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국의 중년들이 홀로 되었을 때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살짝 엿보고, 작은 조직 안에서 자신의 권위를 최대한 누리는 삶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한 놀라운 실험을 다루는데 이전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했던 것임을 생각하면 쉽게 동의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 흔적을 보고 안도하는 여성들의 모습에는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컴퓨터공학과 교육학의 통섭에 대하여>는 한국 교육 현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자 있을 수 있는 해프닝을 다룬다. 읽으면서 광고로 봤던 수많은 시골의 학교 등이 떠오른다. 표제작 <나는 절대로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는 작가가 제일 좋아하는 글이라고 한다. 우린 젊을 때 이런 말을 자주 하지만 늙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젊은이들에게 이런 취급을 받는다. 노년의 발버둥이 어쩌면 더 추한 모습을 보여주는지도 모르겠다. <감정을 감정하기>는 다시 전자뇌 문제로 넘어가고, 안드로이드의 인공지능 등에 대한 문제로 확장시킨다. 인터뷰 마지막에 밝혀지는 놀라운 사실과 여운은 역사를 한 번 가볍게 훑어보게 만든다.


<한 터럭만이라도>는 배양육과 인간의 지능을 가진 앵무새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서 인육을 배양육으로 만들어 판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광우병 문제가 떠올랐다. 아이큐 107인 앵무새가 화자와의 관계에 대해 논의하는 부분은 인간의 시각을 뒤집는 부분이 있다. 배양육을 중심에 놓고 민감한 이야기를 주변에 풀어놓으면서 예상하지 못한 사고를 하게 만든다. <거인의 노래>는 왠지 어딘가에서 본 듯한 느낌을 준다. 과연 그들이 본 것의 정체는 무엇일지 궁금하다. 그리고 우주선에 탄 두 사람의 출신 등도 앞으로 변할 한국의 미래 인구 구조를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시간 위에 붙박인 그대에게>는 불멸에 대한 이야기다. 쌍둥이 역설에 대한 변주라고 작가는 말했지만 인간의 오랜 숙원인 영생에 대한 나름의 고찰을 담고 있다. 늙지 않는 것과 죽지 않은 것을 구분하여 진행하는 이야기 속에서 시간의 유한성은 불멸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불멸을 획득한 동생과 유한적일 수밖에 없는 언니의 갈등과 오해와 이해를 가볍고 단순하게 풀어놓았다. 가볍고 단순하다고 했지만 유한성을 가진 사람들의 욕망까지 단순하지는 않다. 광속과 시간의 상대성과 과학의 발전 등을 다시 한 번 더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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