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지음 / 파람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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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김훈의 소설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김훈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재밌게 읽었던 것 같다. 소설도 몇 권 사놓았는데 쉽게 손이 나가질 않는다. 개인적으로 그의 이야기와 문체와 표현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한 이야기가 아니고, 아마 집중해야만 그 의미와 재미를 누릴 수 있기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내 독법에 조금 변화가 생긴 것인지, 아니면 이 이야기 속에서 내가 다른 무언가를 발견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 일지도.

 

현실의 세계도, 과거의 역사도 아닌 가상의 역사와 공간을 배경으로 두 문화의 충돌과 그 충돌 속에 인간을 태우고 다닌 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유목 민족의 나라인 초와 농경문화의 단이 충돌한다. 이 충돌 전과 이후의 이야기는 우리가 역사 속에서 본 것과 닮았다. 작가는 전쟁의 참사 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보다 역사의 흐름 속에 그것을 녹여내었다. 실제 참혹한 장면들을 자세하게 묘사하기보다 간결한 문장으로 표현해 더 이상의 감정 이입을 막는다. 긴 역사에서 이런 일들은 너무 자주 일어난다. 실제 소설 속에서 왕의 지시에 얼마나 많은 죽음들이 이어졌는가. 어쩌면 불필요한 표현이자 감정 낭비인지도 모른다.

 

<시원기>와 <단사>란 가상의 역사서와 민담 등을 인용한 글들은 이야기 자체에 환상을 가미한다. 기록의 파편은 상상력에 기댈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작가의 상상력으로 무한한 이야기의 공간을 열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이야기가 인류가 최초로 말에 오르게 된 이야기다. 추가 총총이란 말에 올라타 바뀐 시야와 속도 등을 얻게 된 것과 이것을 자신들의 부족장에게 알리면서 생긴 이야기는 압축되고 현실적인 부분을 다룬다. 그의 딸 요가 총총과 교미하고 백산으로 들어가 무당이 된 이야기는 이후에 수많은 전설과 민담으로 이어진다.

 

두 문화 속에 두 마리의 말이 등장한다. 신월마 혈통의 토하와 비혈마 혈통의 야백이다. 토하는 초의 왕이 되는 표가, 야백은 단의 군독이 탄다. 이 두 말은 최고의 명마이지만 인간의 전쟁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들의 힘과 정체성을 잃는다. 우연히 강가에서 만나 교미하는데 토하가 새끼를 가진다. 최고의 만남이지만 마의들은 교미 대상자가 잡종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낙태시킨다. 이 일이 토하의 몰락을 가져온다. 인간들의 두려움과 욕심이 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어찌 말에게만 해당되겠는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수많은 민초들도 마찬가지다.

 

다른 두 문화가 충돌하면서 생기는 문화 차이는 이 소설의 또 다른 재미다. 초가 개를 전쟁에 이용해 싸우는 것을 보고 단의 왕 칭은 개처럼 싸울 수 없다고 문화적 우월감을 내세운다. 하지만 단이 내뱉은 말(言)은 어느 순간 개보다 못한 말(言)로 초에서 취급된다. 농경 집단의 단이 굳세게 세운 성곽에 숨어 초의 공격을 막는 모습은 너무 낯익다. 이런 문화 충동과 차이는 몽골 대제국을 자연스럽게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말과 함께 병장기의 변화를 간결하게 표현했지만 이 변화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재갈만 해도 어떤가. 말안장과 말발굽의 발명은 또 어떤가. 하나의 역사 속에 이런 발명들은 쉽게 묻힌다.

 

소설을 읽다 보면 문장을 타고 무아지경으로 달리는 순간이 가끔 생긴다. 이 소설에서 신월마, 비혈마가 대지를 밟고 달릴 때, 연의 행동을 따라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려낼 때 나도 같이 그 속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이것이 깨어지면 단어의 파편 속에서 잠시 허우적거린다. 상상으로 그려낸 세계를 알고 있는 이미지로 대체하면서 생기는 파편들 때문이다. 익숙한 이미지가 작가가 그려내는 이미지보다 앞서 나가는 경우도 생긴다. 욕심 탓이다. 한동안 이 소설 속 이미지들이 나의 머릿속에서 강하게 꿈틀거릴 것 같다. 집에 있는 김훈의 소설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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