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그림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9
히사오 주란.마키 이쓰마.하시 몬도 지음, 이선윤 옮김 / 이상미디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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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편집은 세 명의 작가가 쓴 여섯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개인적으로 히사오 주란의 작품만으로 구성된 단편집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물론 이 아쉬움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하시 몬도의 <감옥방> 같은 작품도 있다. 하지만 분량이나 해설 등을 보면 이 단편집의 주인은 분명히 히사오 주란이다. 소설의 마술사란 수식어로 불린다는 히사오 주란의 작품은 세 편이 실려 있는데 상당히 특이하고 재밌다. 다만 현학적인 용어의 사용이나 골상학을 이용한 이야기 등은 현재 시점에서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다.


<호반>은 일본 귀족이 사라지기 전 자신의 이야기를 아들에게 편지로 남기는 형식이다.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영국으로 유학가서 실제 한 일은 무엇인지, 돌아온 후 표절한 주장으로 어떻게 관심을 끌었는지 등을 먼저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이 죽였다고 말한 여자를 어떻게 만났고, 그녀를 만나기 전과 후에 여자들에게 어떤 불안감을 느꼈는지 말한다. 사실 이 부분은 평이하다. 그러다 한 사건이 일어나고, 자수를 한 후 무죄로 풀려난다. 개인적으로 조금 더디고 혼란스럽게 느껴지는데 마지막 장면으로 넘어가면서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일어난다. 숨겨져 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부터다. 이런 구성은 <나비 그림>에서도 마찬가지다.


표제작 <나비 그림>은 귀족이자 집안의 여성들에게 과보호 받던 한 남자가 전쟁에 끌려갔다온 이후 이야기다. 너무나도 연약해보여 전쟁터 비에 폐렴에 걸려 죽을지 모른다는 걱정이 생길 정도다. 당연히 편안한 자리에 복무하도록 집인의 권력이 동원된다. 하지만 살아 돌아온 후 그의 이미지는 이전과 다르다. 전범 재판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그를 뒤따라온 현지 여성도 있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그가 전쟁터에 했던 행동들이 드러날 때 시작된다. 양심은 사실 고백보다 집안의 명예와 안녕에 짓눌린다. 묵직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햄릿>은 피서지 호텔에서 시작한다. 괴상한 노인이 나오는데 이 노인에 대한 이야기를 동행인이 들려준다. 이 노인은 돈 많은 귀족에 완벽주의자였다. 햄릿 공연을 위해 그가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들려줄 때 이것이 문제였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공연 중 사고가 발생하고, 그는 자신을 햄릿으로 생각한다. 이런 그의 삶을 그의 약혼자와 친구가 돌보고 있었다. 또 다른 친구가 유럽에서 골상학 등을 연구한 후 돌아온다. 그의 관찰에 의하면 이전 약혼녀와 친구는 악당들이다. 작가는 이 관찰을 사실로 만든다. 불편하다.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는 앞에 깔아둔 설정에 의한 반전으로 이어진다.


마키 이쓰마의 두 작품은 어떻게 보면 촌극이다. <사라진 남자>에서 사라진 남자가 나타날 때 앞의 긴장감을 사라진다. 하지만 작가는 이 긴장감을 다시 되살리면서 끝낸다. ‘상하이하다’라는 단어의 의미가 드러날 때 머릿속 기억들을 더듬는다. 용어는 낯설지만 이런 일이 그렇게 낯선 것은 아니다. <춤추는 말>은 읽으면서 오해와 진실 사이를 헤매고 다녔다. 한 청년의 사랑과 한 여자의 임신을 둘러싼 이야기가 소문으로 엮이면서 사실 관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다음에 좀더 차분하게 읽게 되면 윤곽이 명확해질지 모르겠다.


하시 몬도의 <감옥방>은 짧지만 강렬하다. 높은 노동 강도와 열악한 환경 등에 분노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공사현장을 감옥방이라고 부른다. 이 폭압적인 현실을 고발하는데 실태조사가 온다고 한다. 노동자들은 이 현실을 고발을 위해 노력하고, 현장은 이를 막으려고 한다. 감찰단이 온다. 노동자들을 모으고, 그들의 불만 사항을 듣고 속기로 기록한다.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데 드러난 결론은 나의 예상을 벗어났다. 노동자들이 노력하는 것 이상으로 자본가들도 노력한다.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려야 다시 노동자들이 용기를 낼까 하는 어두운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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