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김언수란 이름보다 김연수란 이름이 나에게 더 익숙하다.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캐비닛>을 재밌게 읽었지만 이후 출간된 작품이 많지 않으면서 잠시 잊고 있었다. 이후 나온 두 권의 소설들이 장르 마니아 사이에 좋은 평을 얻으면서 이 이름에 점점 익숙해졌다. <캐비닛>2006, <설계자들>2010년 출간된 것을 생각하면 다작의 작가는 분명 아니다. 인터넷서점에서 검색하면 몇 권 더 나오지만 단편으로 참가한 것들이다.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뜨거운 피>에 더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와 비슷한 작품들이 김언수 작가만큼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도 생겼다.

 

설계자. 언제부터인가 이 단어에 익숙해졌다. 이 작품 이전인지 이후인지 잘 모르겠다. 그것과 별개로 이 소설은 우리가 보고 알고 있는 세계의 이면을 다룬다. 믿거나 말거나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어느 정도 가능성을 열어놓을 수 있는 설정이다. 음모론을 좋아한다면 더 좋아할 이야기다. 읽으면서 문체와 캐릭터 등에 강하게 끌렸다. 래생부터 털보, 한자, 이발사 등 아주 매력적인 인물들이 나온다. 설계자, 암살자, 그림자, 푸주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이 이면 세계 속에서 암약하고 있다. 일반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는 세계다. 하지만 이들의 뿌리는 우리가 알고 있고 살고 있는 세계다.

 

주인공 래생은 수도원 쓰레기통에 버려진 아이였다. 도서관 너구리 영감이 데리고 와서 키웠는데 혼자 글자를 깨우쳤다. 이 부분은 영감이 바란 것은 아니다. 이후 영감의 암살자로 자랐다. 도입부의 암살도 의뢰에 의한 것이다. 굉장히 낭만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암살은 현실이다. 시체 처리를 애완동물 화장장을 이용한다. 이곳의 주인은 털보다. 이 털보의 화장장은 설계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시체들이 최종적으로 오는 곳이다. 아주 뛰어난 암살자였다가 살인에 반발한 추도 결국 이곳에 오고 말았다. 공식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시체들을 처리하는 곳이다. 이곳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곳이다.

 

한 암살자의 삶을 보여주면서 그 뒤에 앉은 사람들을 쫓는다. 하지만 그 뒤에는 또 다른 누군가가 있다. 분명 최종 보스가 있을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설계자들은 살인 등을 아주 정밀하게 설계한다. 살인 지시도 분명하다. 추가 살려 보낸 여자를 찾아내 죽일 때도 살인 방식을 알려준다. 암살자는 이들의 도구다. 그런데 이 암살자들의 삶이 아주 짧다. 음모론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모론의 대상인 JFK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JFK를 죽인 암살자를 죽이면서 꼬리를 자른다. 필요하면 그 암살자도 죽이면 된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의문의 죽음들에 대해 의심을 눈길을 거둘 수 없게 된다.

 

미숙한 래생이 실수했을 때 잠시 현장을 떠난다. 그때 공장에서 일하는데 그 모습은 과거 남녀 공장 노동자들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와 닮았다. 실수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래생 앞에는 두 개의 길이 놓인다. 그의 선택은 평범함보다 익숙한 과거의 삶이다. 이후 그는 개들의 도서관에 머물고 너구리 영감의 설계에 따라 암살자로 살아간다. 이런 평범한(?) 일상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그의 집 화장실에 놓인 작은 폭탄에서부터다. 죽음의 공포가 그를 덮친다. 그의 유일한 친구에게 부탁해 이 폭탄 제조자를 찾아달라고 요청한다. 누굴까? 그리고 왜? 쉽게 생각하면 도서관을 없애고 싶어하는 한자일 것 같지만 그는 래생이 자기와 일하길 바란다.

 

한자도 도서관에서 자랐지만 독립해 점점 자신의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보안회사 등으로 위장된 그의 사무실은 강남 요지에 위치해 있다.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푸주가 보여주는 거친 사업과 달리 이 설계자들은 조금 더 세련되어 있다. 하지만 하는 일은 암살이란 점에서 같다. 이 소설에서 대선은 아주 중요한 행사다. 쉽게 설계자들이 움직이지 않는 시기다. 권력자들 눈밖에 나면 공권이 개입해 사업이 엉망진창이 된다. 그래도 몰래 자신이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한 어두운 작업은 계속된다. 래생의 유일한 친구가 죽은 것도 바로 이 연장선이다. 암살자에게 복수는 아주 낭만적인 단어이지만 래생은 몰래 그것을 바란다.

 

이야기는 현재에서 과거로, 설계자들의 역사와 암살자들의 관계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시대의 변화가 요구하는 바를 따라가지 않으면 도태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인물들이 너구리 영감과 한자다. 이 설계자들의 세계를 깨트리고 싶은 사람도 있다. 가장 뒤에 누가 앉아 있는지 모른다면 이 세계 자체를 깨트리면 되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설계자들의 장부가 대중에게 알려지면 이 판이 깨어질 것이란 생각이다.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고, 의심스럽게 눈여겨 본 인물이 여기에 가세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암울한 느와르의 마무리와 닮았다. 개정판에서 보강된 결말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언제 한 번 확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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