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 속 남자 속삭이는 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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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이는 자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다. 아직 앞의 두 권을 읽지 않은 상태였지만 이 작품을 읽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가독성이 대단히 좋아 작가의 다른 작품에 더 관심이 많아졌다. 사 놓고 묵혀두고 있는 책을 발굴해 읽고 싶다. 재밌게 읽었지만 서평을 쓰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책이다. 그것은 작가가 섬세하게 엮어 놓은 서술 트릭 때문이다. 진실이 드러나는 것은 마지막 장인데 반전의 연속이다. 그리고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아동납치 전문수사관 밀라가 주인공인 속삭이는 자 시리즈 중 한 권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야기는 두 개의 축으로 이어진다. 하나는 등굣길에 납치된 뒤 15년 만에 돌아온 사만타가 프로파일러 그린 박사와 대화를 나누고, 그 속에서 자신이 경험한 일을 풀어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립탐정 브루노가 이 사건을 조사하는 것이다. 이 두 개의 이야기는 한 평범한 소년이 어떻게 괴물이 되었는지와 그 괴물이 또 어떻게 한 사람을 최악의 상황으로 밀어넣는가 이다. 괴물이 되는 과정을 좇는 것이 브루노가 하는 일이라면 사만타의 기억 속에서 마주하는 것은 최악의 사육이다. 이 두 개의 이야기는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브루노는 사실 좋은 사립탐정이 아니다. 15년 전 사만타의 부모들이 의뢰한 것도 돈만 꿀꺽했다. 자신이 죽을 날을 받아놓은 상태고, 사만타가 15년 만에 살아 돌아오면서 이 사건 조사에 열을 올린다. 오랜 사립탐정 활동으로 쌓인 경험은 사만타가 발견될 당시 비밀 정보를 얻게 한다. 그녀에 대한 제보 전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브루노는 이 전화 내용을 직접 듣고 누가 이 제보 전화를 했을지 찾아낸다. 그리고 사만타가 사라질 때 마주한 토끼 가면을 다시 만난다. 제보자는 그 토끼 가면을 보고 두려워 떠났고, 전화만 남겼다. 이 단서를 가지고 브루노는 일명 버니라고 불리는 범인을 찾아간다.


납치된 후 미로 속에서만 산 사만타는 기억의 미로 속에 갇혀 엇갈린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린 박사는 그녀가 기억해야만 범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미로 속 이야기는 잔혹하고 가슴 아프고 외롭고 무섭다. 강한 의지가 없다면, 작은 희망이라도 없다면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런 환경 속에서 지속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나라면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그녀의 이야기가 더 무서운 것은 버니가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정신세계를 파괴하고 고문하는 최악의 상황에 놓인 한 여성이 마주한 현실은 쉽게 공감하기 힘들다. 만약 공감한다면 공감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할지 모른다. 상상의 문을 살짝 열다가 닫을 수밖에 없다.


많은 전문가들이 말한다. 악은 우리 주변의 평범함 속에 있다고. 보통 사람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괴물로 움직이는 사람은 쉽게 눈에 띄지만 보통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찾기 쉽지 않다. 평범함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그 괴물이 다가와도 인지하지 못한다. 보통 사람의 가면을 벗고 괴물이 될 때는 이미 늦다. 솔직히 말해 이런 생각을 읽으면서 하지 못한다. 문장 속에 이런 글이 나와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앞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다. 최근에 읽은 작품들이 심리 묘사에 치중하는 스릴러였는데 이번 작품은 심리 스릴러와 탐정물을 같이 엮었다. 당연히 반전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왜 이 작가를 높이 평가하는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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