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첼의 죽음으로부터
플린 베리 지음, 황금진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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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상 최우수신인상 수상작이다. 미국 작가인데 영국을 배경으로 썼다. 역자 후기를 보면 일주일 정도 배경이 될 곳을 조사했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소설의 장소가 실제 하는 곳이 아니라 작가가 창조한 장소란 점이다. 영국에 간 이유도 구글의 스트리트뷰를 보는 것만으로 부족해서였다고 한다. 이 방문을 통해 중요한 장소 중 한 곳이 만들어졌다. 두 나라의 언어 차이는 번역된 소설이란 부분에서 그 차이를 알 수 없다. 페미니즘 스릴러라고 하는데 이번에 처음 들었다.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하는데 문장이나 분위기를 끌고 가는 힘이 상당히 좋다. 개인적 취향의 차이일지 모르겠지만 흡입력은 조금 떨어진다.

 

언니 레이첼을 죽인 살인자를 동생 노라가 직접 찾는다는 설정이다. 역에 마중 나오지 않는 언니를 생각하면 집에 갔다가 애완견 페노가 죽은 채 매달려 있는 것을 본다. 집 안에서 언니가 피로 젖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울부짖으면서 언니에게 다가간다. 응급조치를 하다 중단한다. 이 행동이 언니에게 더 해로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결국 언니는 죽었다. 신고했던 구조요원이 이 사실을 확인해주고 경찰에도 신고한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추억과 나쁜 기억이 현재 사건과 이어진다. 그 나쁜 기억 중 최악은 열일곱 살에 당한 폭행이다.

 

노라가 생각하는 언니는 쉽게 당할 여자가 아니다. 어릴 때 있었던 폭행 사건에서도 결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공포에 짓눌려 집에 숨기보다 범인을 찾아나서는 성격이다. 이 범인 찾기는 결코 멈춘 적이 없다. 가능성 있는 범죄 사건이 있으면 법정을 찾아간다. 노라가 생각하는 가설 중 하나는 이 범인이 언니를 찾아와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레이첼 주변 사람들을 의심한다. 그러다 한 인물이 의심스럽다. 바로 배관공인 키스다. 노라는 계속해서 그의 주변을 맴돈다. 언니의 이전 연인도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렇게 그녀는 스스로 정한 용의자 주변을 맴돈다.

 

언니가 당한 폭행의 영향인지, 아니면 사회의 한 단면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인지 노라가 낯선 남자를 만나는 순간 느끼는 불안감을 잘 표현한다. 경찰이라고 해도 아닐 가능성을 생각하고, 이웃도 마찬가지다. 언니처럼 폭행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이어지고, 작은 호신무기를 손에 꽉 쥔다. 어둡고 낯선 곳에서 스쳐지나가는 남자도 불안하다. 남성의 폭력 앞에 무력하게 노출된 여성들의 사건도 몇 번이나 다룬다. 피해 여성들이 누구나 레이첼처럼 강인한 것은 아니다. 아마도 레이첼도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는지 모른다. 애완견 페노가 저먼셰퍼드를 경비견으로 데리고 온 것을 보면 말이다.

 

그녀가 가진 단서는 과거의 사건과 만나기로 했다는 ‘마틴’이란 남자 이름뿐이다. 그런데 주변 사람 누구도 마틴을 모른다. 경찰의 과학 수사는 그 어떤 증거를 찾아내지 못한다. 잘못하면 미궁 속으로 빠질 수 있다. 그녀가 찾아낸 용의자들은 쉽게 그 혐의를 벗는다. 그리고 남성 폭력에 노출되었던 한 여성을 등장시킨다. 루이스 형사와 많이 헷갈렸던 루이즈다. 남친의 폭력 아래 놓여 있었는데 그 남친이 사고로 죽었다. 이 사실을 알려준 인물은 바로 언니다. 소설 후반부까지 자신이 이 사실을 안다는 것을 루이즈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니를 죽인 사람을 찾는 과정은 과거와의 만남이다. 이 만남 속에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언니의 새로운 모습들을 많이 발견한다. 그녀와 언니와의 충돌도 드러난다. 이런 사실들이 나중에는 그녀를 용의자로 만들기도 한다. 당연한 수순이다. 살인의 피해자보다 가해자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 언니의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녀의 일상은 쉽게 무너진다. 그 속에서 느끼는 불안감과 초조함과 그리움과 슬픔 등은 작가의 정제된 문장 속에서 잘 드러난다. 이런 상황을 나 자신이 완전히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 내가 남성으로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한때 여자들의 택시 납치 사건이 얼마나 많은 여성들로 하여금 택시 승차 공포를 느끼게 했던가. 그리고 이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면 여성들의 연대가 만들어내는 힘과 결과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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