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 - 세계문학의 흐름으로 읽는
이현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로쟈란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인터넷 서점의 블로그를 통해서다. 그가 새롭게 출간된 책에 대한 간단한 평을 단 것을 보고 관심을 두었다. 그러다 그가 쓴 책을 읽으면서 그가 보여주는 글의 깊이에 반했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상당히 명쾌하게 지적하면서 풀어낸 것이다. 이전까지 그냥 무턱대고 읽었던 작품을 이렇게 해석해주니 새롭게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물론 바로 읽지는 않았다. 그러기에는 쌓인 책들과 쌓이는 책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도 그가 쓴 글의 영향은 이후 책을 선택하고, 사는데 조금씩 영향력을 행사했다. 러시아 문학과 유럽 문학 전문으로 알고 있던 그가 한국 현대 문학에 대한 글을 썼다고 하니 어찌 그냥 지나가겠는가.

 

저자는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시대별로 남성 작가 10명과 그들의 작품을 분석한다. 이 열 명의 작가들이 왜 선택되었는지 보여주는데 솔직히 납득되지 않는 작가도 있다. 아마 이름은 알지만 낯설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부분의 작품들을 읽었는데 읽었는지 헷갈리는 작품도 있다. 체계적으로 읽지 않고 남독한 결과다. 확실히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작가도 있다. 집을 뒤지면 한 권 정도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이인성이다. 이런 기억을 가지고 로쟈가 선택한 작가와 작품 속으로 들어갔다. 내가 생각한 부분과 다른 해석들이 하나씩 드러났다.

 

손창섭이란 이름보다 <잉여인간>이란 작품이 더 낯익다. 1950년대는 한국전쟁 바로 직후다. 폐허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놀라운 것은 어머니와의 관계를 지적한 부분이다. 이 원체험이 작품 속에 녹아 있다. 자신의 실명을 작품 속에 그대로 쓴 작품도 있다고 한다. 어릴 때 이런 작품을 보면 실제 이야기로 착각했던 기억이 있다. 낯선 제목이지만 아마 책장 어딘가를 뒤지면 한국문학 전집 중에서 손창섭의 소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최인훈의 <광장>은 거의 필독서처럼 다루어진다. 유명하니 읽었다. 사실 나에게 와 닿지는 않았다. 다른 시대와 상황이, 그의 선택이 공감을 불러오지 못한 것이다. 여러 번 개작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일곱 번이란 이야기를 보면서 왜? 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한때 열심히 읽은 작가 중 한 명이 이병주다. <관부연락선>도 대학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너무 오래 전이라 그런지 사실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한국의 발자크가 되려고 했다는 사실도 조금 낯설다. <지리산>을 읽으면 이태의 <남부군>과 너무 닮은 장면들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단순 대중 소설가로 인식하고 있던 그를 재평가해야 한다고 한 대목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무진기행>은 김승옥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을 읽고 그 수려한 문장에 놀랐다. 김훈의 에세이에서도 김승옥에 대한 글이 나오는데 저자는 문장보다 내용에 더 신경을 쓴다. 이 신화적인 작품을 제외하면 솔직히 강한 인상을 받은 작품은 없다. 솔직히 <무진기행>의 내용도 생각나지 않는다. 이번에 기억을 새롭게 했다.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저자의 지적 중 장편소설로 나아가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대목이 나온다. 윤희중이 현대인의 전형이라고 한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황석영의 초기 단편을 읽고 난 후 만난 <장길산>은 솔직히 지겨워 중단했다. 어린 시절 도덕관의 한계 탓도 있다. 지금도 가끔 황석영의 소설을 읽지만 현실을 다룰 때 그의 작품은 가장 재밌다. 신문 연재가 한국 작가의 재능을 깎아먹었다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이청준을 좋아하게 된 작품이 <당신들의 천국>이다. 지금도 그의 최고 작품으로 친다. 한국소설에서 나의 이십 대는 이청준과 이문열로 대변된다.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은 솔직히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 당시 나의 관심을 다른 작품이었다. 이문열의 교양주의란 대목은 내가 즐겨 읽었던 작품들의 현학적인 부분을 떠올리게 만든다.

 

어쩌면 가장 낯선 작가가 이인성이다. 평론가 김현의 문학그룹에 속해 있었다는 부분이 눈길을 끈다. 난삽하고 난해한 소설이란 평을 보고는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사라졌다. 그래도 찾아내면 한 번 눈길을 줄 것 같다. 유명한 가족을 둔 사람이 명성에 짓눌렸다는 표현은 그렇게 낯설지 않다. 주변에서 가끔 마주하기 때문이다. 이승우의 <생의 이면>은 한 평론가의 추천으로 다시 관심을 가졌었다. 책장에 꽂혀 있는 이승우의 소설들을 생각하면 읽고 싶은 마음은 늘 있다. 프랑스에서 사랑받는 한국 작가란 표현을 보고 영화감독 홍상수가 떠올랐다. 최근 몇 년 동안 무거운 소설을 잘 읽지 못하고 있는데 이 작품은 한 번 읽어보고 싶다. 물론 기약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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